현대 SF와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필립 K. 딕의 국내 유일 인터뷰집

 

실존적 고뇌를 담아내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SF 문학의 한 장을 새롭게 쓴 필립 K. 딕. 대표작들에 얽힌 비화와 사적인 일상을 친근하게 그려낸 그의 국내 유일한 인터뷰집이 출간되었다. SF 장르 아래 다양한 철학적 주제를 넘나드는 필립 K. 딕의 작품은 현재 국내에서도 그 팬층을 확고히 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활동 당시에는 SF에 대한 대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에 그의 작품들은 사후에야 비로소 조명받기 시작했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인물들의 구체적 서사, 독특한 감성으로 그려낸 생동감 넘치는 세계의 풍경은 할리우드로 하여금 작품들을 영상화하려는 욕구를 북돋웠으며, 그 결과 필립 K. 딕의 소설 여럿이 영화로 재탄생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 〈토탈 리콜〉(1990),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등의 영화를 향한 대중적 사랑에 힘입어 그의 문학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필립 K. 딕은 SF 작가로서는 최초로 명망 있는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 선집에 포함되며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인터뷰들은 작가의 사십대 시절부터 사망 직전까지의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오랜 기간 운둔자적 삶을 살았기에 그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낸 이 책은 필립 K. 딕의 내면세계를 직접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결과물이다. 고독했으나 재치 넘쳤던 그의 일상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기다려온 독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선물이, 인터뷰집을 통해 그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작품 세계를 향한 친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진정한 인간을 정의하고 싶었네”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를 들여다보는 시선

 

필립 K. 딕의 문학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성의 본질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는 작품 속에 정체성의 혼란, 시뮬라크르,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 등의 소재를 끌어들였다. 끊임없는 자기 의심뿐 아니라 세상을 향해 의문을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탐색은 이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안드로이드인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며,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회에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블레이드 러너〉로 영화화하는 과정을 담은 1981년의 인터뷰에서, 딕이 나치스를 연구했던 경험을 통해 소설의 원류를 발견했음을 알 수 있다. 

 

“굶주린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 탓에 우리는 밤잠을 설쳤다.” 난 여전히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고, 그건 내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네. 우리 중에는 두 다리로 걷는 인간형 생물들이, 형태상으로는 인간과 똑같지만 실은 인간이 아닌 생물들이 존재해. 자기 일기에서 굶주린 어린아이들 탓에 잠을 못 잤다고 불평하는 건 인간이 아냐. 인간이라는 종 내부에는 일종의 분기分岐가, 이분법적인 괴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내가 1940년대에 그 일기를 읽었을 때 탄생했다네. 진정한 인간과, 단지 진정한 인간을 흉내 낼 뿐인 존재들 사이의 괴리 말일세.
―149쪽

 

1979년의 인터뷰에서도 필립 K. 딕은 20세기의 가장 큰 위협이 전체주의적 국가라고 이야기하며, 각자의 고유한 세계를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세계란 그것이 실재한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경험할 것인지로 설명된다. 이러한 ‘주관적 세계’에 대한 탐구는 한 인물의 세계가 그보다 더 강한 위치에 있는 다른 사람의 세계에 침식당하는 섬뜩하고 기괴한 상황에 대한 묘사를 이루어냈다. 이는 자신의 세계가 침식당하기 쉬운 상황에 놓인 약자들을 옹호하는 일로 이어졌으며, 그의 소설 속에서 매번 약자들이 주인공이 되어 분투하는 까닭이다.

 

본질적으로 내가 옹호하는 대의는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의야. 만약 나 자신이 강자였다면 전체주의를 그렇게 큰 위협으로 느끼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난 강자가 아니기 때문에 약자에게 공감한다네.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본질적으로 반反영웅들인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거의 루저에 가까운 친구들이지만, 나는 혹독한 세상에서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특질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네. 그러는 동시에, 폭압에 대항하려고 같은 수단을 쓰다가 어느새 상대방처럼 착취적이고 조작적인 인간이 되어버리는 걸 보고 싶지는 않고.
―114~115쪽

 

 

불안하고 고독했던 삶
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보는 여행

 

일평생 44권의 장편과 120여 편에 달하는 중단편을 발표하며 다작했지만, 필립 K. 딕의 삶은 고독감으로 가득했다.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며 낮은 고료를 받았던 탓에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는 수년간 중추신경 흥분제인 암페타민을 복용해가며 작품을 양산해야 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주위 세계와 자주 결별했고, 이러한 시간이 쌓여 마침내는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는 삶에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순간 딕은 고독함을 덜어내기 위해 등장인물들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에게 책을 탈고하는 과정은 곧 친구들을 잃어버리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난 글 쓰는 게 좋네. 정말로 좋아하지. 난 내가 창조한 등장인물들을 사랑하거든. 그들 모두가 내 친구였어. 책을 탈고하면 상실감으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정도라네. 다시는 그 친구들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다시는 그 친구들이 고투하고, 역경에 맞서 싸우는 걸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니까 말이야.
―38쪽

 

필립 K. 딕은 광기와 다양한 종류의 신경증으로 수식되곤 하는데, 각각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보다 더 깊은 속내를 이해하게 된다. 1974년에 이루어진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도 적은 있기 마련이다」 인터뷰에서 폴 윌리엄스는 우연한 상황에서 자신을 탓하는 경향을 보이는 딕에게 수차례 피해망상을 논한다. 그러나 그에게 현대사회는 모든 개인이 감시하에 존재하는 세계와 같았고, ‘피해망상적’이라고 불린 생각들은 그를 둘러싼 우주의 체계를 민감하게 감지하는 특유의 예민한 감각이었다. 따라서 피해망상이라는 단어로 함축된 많은 부분에는 그가 바라보던 세상의 어느 한 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간절한 요청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