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태평양을 막는 제방』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말년의 인터뷰 너머, 거장의 속되고도 진실한 삶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창조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터뷰집 『뒤라스의 말』이 마음산책 ‘말 시리즈’ 열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의 선형적인 흐름이나 사건 전개식 구성을 배제하고, 인물의 심리 표출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온 뒤라스. 그는 때로는 ‘누보로망’ 작가로, 때로는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꼽히지만 스스로는 특정 사조에 갇히길 거부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개척하는 데 충실해왔다. 또한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 영역을 확장해왔기에 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도 적지 않다. 

뒤라스의 말년 1987~89년 사이 이뤄진 인터뷰를 토대로 엮은 『뒤라스의 말』은 유년시절부터 인터뷰가 이루어진 시점까지 연대순으로 작가의 삶을 통과하며 그의 작품 활동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물론 뒤라스가 인터뷰에 인색하지 않았기에 그의 인터뷰집은 여럿이지만, 오직 한 권의 책에서 작가의 인생과 유산을 철저히 파고들겠다는 목적으로 진행된 것은 『뒤라스의 말』이 유일하다. 특히 인터뷰어인 저널리스트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와 뒤라스 사이에 자리한 밀도 높은 친밀감과 동질감은 뒤라스의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바탕이 된다. 뒤라스가 당시 ‘어리고 순수했던 2개 국어(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구사자 여성’(토레)에게, 인도차이나에서 2개 국어 구사자(프랑스어, 베트남어)로 자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이입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에두르지 않고 작가의 생각이 가감 없이 드러난 이 텍스트는, 뒤라스의 세계를 완벽에 가깝게 보여주는 ‘지극히 뒤라스다운 인터뷰집’이 되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늘 그렇듯 텔레비전이 거실 안쪽 구석에서 켜져 있었고, 뒤라스의 얼굴은 며칠 동안 부어 있는 듯 피곤해 보였다.

그녀가 나에 관해 모든 걸 알고 싶어 했다. 그녀처럼 나도 나의 인생이며 사랑에 대해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나는 긴 시간 동안 나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란, 아마 끝까지 우리가 일생을 통해 만나는 인물 중에서 가장 예측이 불가하고 가장 미친 존재일 거야.” 그녀가 이미 희미해진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_10~11쪽 

 

 

“나는 오직 두 경우에만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자살하거나, 글을 쓰거나” 

글쓰기를 둘러싼 작가의 내밀한 고백

 

 

작가의 삶이 작품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경험은 작품 세계 전반을 지배하는 원체험이 되기도 한다. 뒤라스 또한 예외가 아니며 그의 글에 반복되는 불가능한 사랑과 지독한 상실, 고통과 불안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 가령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의 출생, 집안의 몰락,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 레지스탕스 활동, 38세 연하의 연인과의 사랑 등 작품 곳곳에 흔적을 드리운 그의 삶은 작가의 육성으로 생생히 재생되며, 이런 언급은 일종의 코멘터리로 기능하면서 뒤라스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한다. 특히 인도차이나에 머물던 유년시절에 경험한 에로티시즘을 토로하는 대목은 『연인』의 성적인 묘사만큼이나 과감하고, 알코올중독 경험은 작가가 마주했던 지독한 외로움과 연약한 내면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감정을 넘어 비인격적이고, 맹목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난 그 남자의 나에 대한 사랑이, 철저히 모호한 우리의 관계에 자극받아 번번이 타오르는 그 에로티시즘이 좋았어요. 

_65~66쪽

 

난 이제 술이라면 사람을 알듯, 알아요. (…) 지금까지 세 차례나 술을 끊었다가 다시 입에 대기를 반복했어요. 결정적으로 뇌이에 있는 미국 병원에 입원해서 3주 가까이 환영과 정신착란에 시달리며 비명으로 나날을 보낸 후에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죠. 

그 후로 7년이 지났지만, 난 알아요, 당장 내일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

알코올은 고독이란 유령을 미화시켜요. 이곳에 없는 ‘타인’을 대신해주고 오래전, 어느 날, 우리 안 깊숙이 팬 구멍을 메워주죠. 

_181~182쪽 

 

하지만 『뒤라스의 말』의 진가는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즉물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을 넘어, 그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작품 사이의 유기적 관계들을 보여주는 데 있다. 토레는 작가의 삶에 물리적, 정신적으로 영향을 끼친 주요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서 파생된 작품들을 살피고, 각 사건과 사건, 작품과 작품의 상관관계―문학, 영화, 연극 등 표현 양식을 넘나들며, 다른 작품들을 대체하거나 확장하는 또 다른 작품들―를 되짚는다. 동성애자였던 얀과의 만남은 『파란 눈 검은 머리』의 모태가 되고, 이 모티프는 그의 다른 소설 『죽음의 병』과 동명의 연극에도 반복, 변주되는 과정을 질문하는 식이다. 인물 구축, 장소, 대사, 시제 등 소설 창작의 여러 요소뿐 아니라 비평, 수상, 독자 등 책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빠질 수 없다. 무엇보다 방대한 주제가 망라되는 대화를 관통하는 것은 뒤라스의 글쓰기를 향한 욕망과 이를 통한 구원, 새로운 글쓰기를 향한 열정이다. 뒤라스는 “침묵과 부재로 이루어진 글은 어쩔 수 없이 작가를 내면 속으로 내동댕이”치지만, 글쓰기란 매번 앞서의 문체를 깨뜨리고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당대의 규범을 뛰어넘는 글쓰기 

정치, 여성 문제, 문학의 역할 등 사회적 이슈를 보는 명민한 시각 

 

 

여성의 욕망과 사랑을 드러내는 데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오직 문체의 실험을 통해서 써 내려간 뒤라스의 작품은 종종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꼽히며, 그의 문학에 나타난 광기와 불안은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분석 대상이 되어왔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대해 뒤라스는 자신의 작품이 특정 주의로 설명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문학계에서 여성적인 것들이 폄하되었던 맥락에 의문을 표한다. 즉 그는 자전적 소재, 욕망의 고백, 실현 불가능한 절대적 사랑의 추구 등 평론가들에게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된 것들을 ‘여성의 위반’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격상시키고, 전통적 소설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법의 소설, 창조되는 단계의 열린 소설을 고민하는 것이다. 뒤라스 소설의 인장으로 꼽히는 ‘형식’은 오랫동안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금지된 ‘여성’ 작가로서, 그가자신과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찾은 자구책인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쓰는 다른 여성들과 가까운 기분을 느낀다면, 그건 문학계의 ‘앙팡 테리블’이 된 기분이 드는 방식 때문이에요. 평론가들은 늘 어떤 여성적인 영역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들을 비난했거든요. 사랑의 테마나 고백, 자전적 소재 등. 수년간, 여성의 위반은 시에 국한되어 표현돼왔어요. 내가 그걸 소설로 이동시켰죠. 내가 한 많은 것들은 혁신적이에요.

_114쪽

 

『뒤라스의 말』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작가 뒤라스’뿐 아니라 고독의 불가피함과 생의 비극을 사유하는 철학자, 전쟁과 나치에 맞선 레지스탕스, 공론장에 뛰어든 저널리스트, 영화를 보는 엄격한 예술관을 가진 평론가, 여성 작가가 발 디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등 인간 뒤라스의 다채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연인』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잊을 수 없는 독자들, 이들 작품에 그늘을 드리운 작가의 초상이 궁금한 이들에게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