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영화, 설치 미술까지 분야를 넘나든 전방위 예술가

아녜스 바르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주는 국내 첫 책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으로 영화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며 일찌감치 ‘누벨바그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거머쥔 아녜스 바르다. 그는 기성 상업 영화의 관습을 거부하고 저예산, 즉흥성, 자유로운 촬영 기법을 중시한 누벨바그의 선구자로 불린다. 첫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바르다는 영화를 잘 몰랐기에 오히려 기존의 영화 어법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진가로서 예술가 인생에 첫발을 내디딘 바르다는 “사진을 찍는 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국립민중극장의 공식 사진가로 당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찍으며 영화와의 연결 고리가 생겨났고, 자연스레 영화라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을 얻게 됐다. 사진과 영화를 병행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던 그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3) 촬영 중 발견한 감자를 설치 미술 작품으로 발전시키며 미술작가로의 행보를 시작한다. 머릿속에 펼쳐진 드넓은 세계a를 시각적 우주로 만들어내는 방식에 한계란 없었다. 그러나 평생 쌓아 올린 바르다의 명성과 업적은 철저하게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리크 로메르 등 같은 시대 남성 감독들 뒤에 놓여 왔다. “저는 그저 완벽한 문화적 도구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시네마테크나 도서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죠. 저는 잊힐 거예요.”

마음산책 열네 번째 ‘말 시리즈’의 주인공은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호랑이처럼 싸워야만” 했던 아녜스 바르다이다. 그는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발견하는 모순들을 끊임없이 조명해왔다. 처음으로 국내에 바르다를 소개하는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에는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스무 편의 인터뷰가 담겼다. 연도순으로 각본가, 영화평론가, 배우 등 각기 다른 스무 명의 인터뷰어와 나누는 때론 유쾌하게 장난스럽고 때론 묵직하게 진솔한 대화들은 읽는 이를 웃고 울게 한다.

유년 시절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자란 덕에 자유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는 일화부터 영화감독이자 창작자로서 느끼는 고충과 희열, 외부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며 예술적 자아를 유지하는 힘, 삶과 사람을 향한 애정,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한 견해까지 내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터뷰 당시 상황에 따라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즉흥적인 발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톡톡한 매력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료집 역할을 한다. 2019년 아흔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는 작품을 넘어 그 자신의 말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곧 죽겠죠. 하지만 제 작품은 저 스스로도 존중해요. 제 작품을 칭찬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싸워서 얻어낸,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로요. 돈도 없이, 힘도 없이, 보답도 없이 늘 투쟁해왔죠. 찾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손을 놓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아요.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아요. 완성된 제 작품엔 박수를 보내면서도 말이죠. 

─258쪽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주변인으로 여겼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미술로 자연스럽게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지금 자신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을 찾았다. 그의 삶이 그의 작품 목록만큼이나 풍성해 보이는 이유는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르다에게 주된 표현 도구는 영화였고, 그는 그 도구를 마음껏 활용했다. 더할 나위 없이.

─407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삶과 사람을 향해 보내는 집요한 애정

휴머니즘과 굽히지 않는 긍정주의로 빚어낸 작품 세계


바르다의 관심은 늘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향했다. 삶에서 포착한 문제의식을 유의미하게 전달하기 위해 바르다는 허구와 실재를 결합하는 표현 방식을 고수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라는 두 장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한 노력은 실제 마을 주민들과 배우들을 함께 출연시킨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부터 시작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클레오가 바라보는 거리 또한 실제 거리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 최대한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살리려 했다. 떠돌이 소녀의 죽음을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방랑자>(1985), 40세 여성과 15세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아무도 모르게>(1987), 남편 자크 드미의 어린 시절을 탐구한 <낭트의 자코>(1991) 등 바르다의 픽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간다.

이러한 영화 만들기는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탐구적이고 실험정신 강한 바르다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페라 무프 거리>(1958)에서는 한 임신부가 무프타르 거리를 거닐며 품는 다양한 상념들을 접이식 의자 위에 올라가 담아냈다. <다게레오 타입>(1975)에서는 80미터짜리 전선을 다른 차원의 탯줄로 상상하며 그 범위 안에 사는 주변 이웃들을 보여준다. 남이 버린 물건과 음식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영화계 안팎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바르다는 젊은 예술가 JR과 사진 트럭을 타고 프랑스 마을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로 “시네마로 쓰는 에세이의 정점”(김혜리)에 올라섰다.

한동안 영화에 전념하던 바르다는 일흔 중반에 들어서 설치 미술로 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일찍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소통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고 말했던 그는,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더욱 친밀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설치 미술에 큰 매력을 느끼며 작업을 이어간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활동 영역의 확장에도 변함없이 바르다의 내면 한가운데 자리했던 것은 사람과 삶을 향한 애정이었다. 그런 휴머니스트적인 면모야말로 바르다의 예술 생애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해요. 제 영화에서 당신을 왜곡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꾸밈없이 영화에 담아낼게요.” (…)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한다면 아주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요. 물리적으로 천천히, 도의적으로도 천천히 다가가야 해요. 어떤 인물을 향해 줌인을 한다면, 최대한 부드럽게 해야 해요. 그들의 실제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생물학적으로도 정확한 방식으로 따라가야 하죠. 카메라가 움직일 땐 영화의 리듬을 따라야만 해요.

─140~141쪽


촬영은 영화언어들 가운데 하나예요. 구도 잡기나 편집과 마찬가지로요.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하기도 하죠. 관객들의 감정선을 제 의도 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어요. 궁극적으로 모든 창작자는 매개자예요. 삶과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직감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생산물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개자죠. 

─62쪽



여성으로서 여성의 영화를 만든다는 자긍심

계속 싸워나가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자는 희망의 메시지


바르다는 차분하고 꾸준한 관심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고민했고, 그에 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암 진단을 기다리며 자신과 세상을 재인식하게 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뒤이어 나온 <행복>(1964)에서는 아내를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찾는 남편에게 단죄를 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바르다는 자신이 <행복>에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행복의 가변성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테마였음을 확실히 했다.

몇 년 뒤 그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 한 편을 만든다. 두 여성의 우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주장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를 통해 68혁명보다 보비니(한 소녀가 성폭행당한 뒤 낙태를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아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온 사건)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미 1971년 여성 지식인 343명이 참여한 낙태 합법화 찬성 선언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터였다. 바르다는 그때까지 남성 영화감독들 손에 수동적이고 사랑밖에 모르는 존재로 다뤄진 여성상에 반기를 들며 주체적인 여성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

“저는 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물론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엔 충분치 않겠지만요.” 스스로 말하듯 바르다는 여성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대로 여성운동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급진적이지 않은 여성들을 탄압하는 대신, 다양한 유형의 여성들과 함께 사회 제도와 관습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충분히 페미니스트적이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 페미니스트적”이라고 평가받는 어중간한 위치에서도 바르다는 소신껏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나간 바르다의 신념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들에 의해 강력하게 구축됐죠. 남성들은 그걸 받아 들여요. 여성들 또한 그걸 받아들이고요. 여성 스스로가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죠. 옷도 예쁘게 잘 입어야 하고, 사랑스러워야 하고, 항상 사랑을 꿈꿔야 하고 등등. 저는 이런 문제들에 늘 분노했지만, 그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저 역시 역부족이었죠. 영화를 보면 여성은 언제나 사랑과 연관이 있어요. 사랑에 빠져 있거나 그렇지 않죠. 사랑에 빠진 적이 있거나 앞으로 그럴 예정이죠. 혼자일 경우에도 과거에 사랑에 빠졌었거나, 마땅히 사랑에 빠져야 하기에 당장이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죠.

─120쪽


한 여성의 삶에서 한 명의 남자는 고작 5.1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뿐이에요. 그가 호감형이어도 그렇고,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죠. 여성에겐 직장이 있고, 아이들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어요.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요. 다른 모든 남성의 영화를 보세요. 역전된 관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적용시키죠. 서구 영화 중에서 여성이 러닝타임의 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범죄 영화에서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얼마나 되나요? 심리 드라마도 마찬가지고요. 남자들은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여요.

─157쪽


■ 추천사

아녜스 바르다하고는 세 번 사랑에 빠졌다. <방랑자>가 최초였다. 시체로 시작하는 이 이상한 여행기는 영화 안에서 생은 죽음으로, 서사의 종결로도 끝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설령 내가 평생 방랑만 하다 더러운 신발을 신은 채 죽는다 해도 영화는 거기서 의미를 볼 수 있었다! 극장에서 뒤늦게 관람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두 번째 매혹이었다. 이 작품과 바르다의 초기작들로 인해, 누벨바그라는 영화사적 사건은 비로소 내게 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정작 영화기자로 취직한 다음 한동안 바르다는 책 속 거장의 이름이 되어갔다. 그러고는, 똑똑. 경이로운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가 문을 두드렸다. 21세기의 아녜스 바르다는 시네마로 쓰는 에세이의 정점에 도달해 느긋이 머물렀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과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나의 세 번째 사랑은 끊길 틈이 없었다.

1962년부터 2017년까지 이뤄진 스무 편의 바르다 감독 인터뷰를 모은 이 책이 나를 질투심으로 괴롭힌 것도 놀랍지 않다. 특히 그의 모국어로 진행한 예술가의 인터뷰에는 대화의 깊이와 별개로 드러나는 체취와 결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 동경해 왔지만 책을 덮은 이제야 그의 영화사 시네타마리스의 현관을 열고 들어간 기분이 드는 이유다. 때로 내용이 겹치고 숫자가 오락가락하기도 하는 이 인터뷰들을 따라 나선형으로 걷다 보면 당신도 히치하이커를 지나치지 못하는 운전자, 존경받지만 투자는 못 받는 감독, 여성영화의 생동하는 정의, 장난기 넘치는 만담꾼을 만나고 포옹하게 될 것이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