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카이로의 넝마주이’ 엠마뉘엘 수녀의 유언
100년의 삶이 응축된 지혜를 배운다

 

 

2008년 10월 19일, 엠마뉘엘 수녀가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여성 부문 1위로 꼽기도 했던 이 시대의 성자 엠마뉘엘 수녀. 그녀가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자크 뒤켄과 나눈 인터뷰의 결실인 이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건 2008년 8월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엠마뉘엘 수녀가 100세를 앞두고 지난 삶을 통해 얻은 삶과 죽음, 행복과 고통의 메시지를 담은 마지막 유언과도 같다.


빈곤과 소외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세계를 품에 안았던 진정한 세계인, 소외받고 학대받는 모든 아이들의 어머니, 불의에 맞서 싸우는 열정적인 행동가였던 그녀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명징하게 보였을 삶의 끝에서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말은 무엇인가.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는 그녀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고백록이자 우리 삶의 지침서다.



자신을 희생해선 안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 길을 잃지 않는 법에 대하여


엠마뉘엘 수녀는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눈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한 후 일찍이 세상의 고통에 눈을 떴다. 그녀는 스무 살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 후 극심한 빈곤과 질병으로 가득한 빈민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하며 주거지를 일구고, 학교를 세우고, 보건소를 만들어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이 책은 이러한 엠마뉘엘 수녀의 특별한 삶의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열정적이고 진솔한 감정 표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솔직히 남자에게 끌린 적은 한 번도 없으셨습니까? 사랑에 빠진 적이 없으셨습니까?
있었지요. 튀니지에서 교사로 일할 때였어요. 내 눈에 아주 똑똑하고 매혹적으로 보이던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뛰는 걸 경험했지요…….
-151쪽에서


유행하는 모자를 갖기 위해 고집을 부리고 파티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가 “하느님을 위해 잘생긴 남자들을 버릴 거야”라 말하며 청빈과 정결의 서원을 하기까지, 한 여자로서 겪었을 갈등이 수많은 느낌표와 말줄임표 속에서 엿보인다. 간혹 복수의 유혹을 받는다는, 나쁜 짓을 나쁜 짓으로 갚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경우도 있다는 솔직한 고백 앞에 그녀는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깝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나는 내 삶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탄탄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19쪽에서


엠마뉘엘 수녀는 고통을 감내하며 희생하는 사랑과 봉사에는 반대한다. 자신을 대면하는 것,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선행되어야 타인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이는 삶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통해 자신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거기에 온몸을 던진 본보기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를 뛰어넘어 사회 문제 전반에 던지는 지침
희망을 찾아가는 법에 대하여


엠마뉘엘 수녀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여전히 활기 넘치고 거침없는 태도로, 그동안 한 번도 언급한 적 없었던 일화와 생각들을 쏟아낸다. 그중에서도 전쟁과 폭력, 빈곤과 기아의 문제 등 자신이 평생 화두로 삼았던 다양한 사회 문제, 특히 차별받고 학대받는 여성과 아이들의 문제에 관한 생생한 증언들은 자못 놀랍다. 가령 열 달마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 카이로의 빈민촌 여자아이들이 매해 임신하고 그중 절반은 사산하는 참상을 언급하며 교리에 위배될지라도 그 아이들 위해 피임약을 처방하는 것이 옳다고 단언하는 부분이나, 킬러로 자란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례 등은 인간 존엄성 회복의 절실함을 전해준다.


또한 청소년 교육 문제에 대한 소신도 피력한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에게 반항하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지요?
그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유럽에서 만난 세상, 껍데기와 권력과 돈만이 중시되는 세상에 맞서 반항하라고 하지요. 하지만 모든 걸 깨뜨리면서, 혼자서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면서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147쪽에서


엠마뉘엘 수녀는 ‘위에서 아래로 가는’ 기부에 길들여져 오직 요구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을, 운명을, 불행을 탓하지 않고 자기 행동과 선택에 책임질 줄 아는 성인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녀가 구호 활동의 기본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라 외쳐온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협회는 흔히들 얘기하는 의미에서 구호단체가 아닙니다. 이 협회의 방식은 다릅니다. 빈민촌에서 내가 썼던 방식에서 따온 것이지요. 무엇보다 타인에게 베풀려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다시 일어서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179쪽에서


하느님을 따르는 수녀로서 종교나 복음에 관한 언급이 없을 리 없지만 그것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조광호 신부의 말처럼 엠마뉘엘 수녀는 ‘위대하고도 비참한 현대인에게 국적과 인종, 종교의 차이를 넘어 살아생전에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일러주고자’ 할 뿐이다. 따라서 “가는 길이 아무리 멀지라도 자신의 시야에서 목표를 잃지 마세요.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삶의 의미가 보입니다”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초월적인 영성이 아닌 현실에 충실한 행동가로서의 절절한 외침에 가깝다.


증오를 영속시키고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입니다. 처음으로 나는 이성에, 이치를 따지는 이성에 호소합니다. 모든 종교의 사람들이 지혜로운 말을 위해 화합해야 합니다. 시급한 일입니다. 정치인들은 가난에 맞서는 아름다운 전쟁을 위해 화합해야 합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계획 속에 들어 있기를 바랍니다!
-126쪽에서


그녀의 참된 조언은 죽음이라는 절대 평등의 울타리 속에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숙명적 존재인 우리들이 서로 아끼고 돕는 것은 종교를 떠나 인간의 천부적인 의무이자 도리임을 깨닫게 한다. 뿐만 아니라 위로 올라가려는 삶에만 매달리는 현대인들의 마음속 폐허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한 세기를 통과하는 진정한 서사시


엠마뉘엘 수녀는 빈민촌에는 ‘다정함과 미소’가 있었지만, 유럽에는 ‘우울과 의기소침’이 가득했다고 말한다. 깡그리 박탈당한 세계에서 따뜻한 연대감과 공생 의식을 느꼈으나, 물질적 풍요가 가득한 곳에는 온통 불평불만에 ‘불필요한 잉여’뿐이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엠마뉘엘 수녀는 소통의 부재와 가난한 정신은 결국 진정한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는 것을 자신의 체험으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엠마뉘엘 수녀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동안 잊고 있던 기본적인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적 교감과 소통에 새롭게 눈뜨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의 추구나 인간성 회복과 같은 이상적 가치가 비실용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이 시대, 한 세기를 통과하는 진정한 서사시와도 같았던 엠마뉘엘 수녀의 삶과 신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추천의 글
이 책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요, 우리 시대의 성자인 엠마뉘엘 수녀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남긴 영적 유언과 같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방황하고 절망하며, 오아시스 가에서도 목말라 죽어가고 진정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무엇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위대하고도 비참한’ 현대인에게 이 책은 국적과 인종, 종교의 차이를 넘어 살아생전에 진심으로 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자 했던 엠마뉘엘 수녀의 간곡한 고백이자 메시지다.
- 조광호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