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의 성인과 21세기 시인의 만남,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문장들
―프란체스코의 성스러운 삶을 크리스티앙 보뱅이 감미롭게 노래한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크리스티앙 보뱅이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의 삶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프란체스코의 감동적인 삶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세상을 향한 그의 신비스럽고 은은한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800년 전에 살았던 한 이탈리아 성인의 모습은 숨 가쁜 현대를 사는 독자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프란체스코(1182~1226)는 「평화의 기도」「태양의 노래」로 유명한 카톨릭교회의 성인이다. 청빈을 주지로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창립했다. 그는 만년인 1224년에 자신의 몸에 성흔(聖痕.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옆구리와 양손·양발에 생긴 5개의 상처)을 받기도 했다. 프란체스코는 수련 도중 환상을 보았는데, 하느님이 그의 위에 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환상이었다. 이 환상이 있은 후에 십자가의 성흔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1226년 10월 3일 운명하였고, 122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또한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Chiesa di San Francesco’은 프란체스코가 서거한 지 2년 뒤 기공하여 1253년에 완성되었는데,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성 프란체스코의 바실리카 유적’ 중 하나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출간 당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1993년 카톨릭 문학대상Grand Prix Catholique de Littérature, 되마고상Prix des Deux-Magots, 조제프 델타이상Prix Joseph Delteil을 수상했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있는 그대로의 내면의 흐름’을 보여주는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프랑스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르 몽드>는 크리스티앙 보뱅을 문학을 하지 않음으로써 문학의 새 풍토를 열어가는 ‘새로운 문학의 대변인’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역시 성인의 삶을 다루었지만 소설보다 감동적이고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이 책의 원제는 ‘Le Très-Bas’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뜻하는 ‘Le Très-Haut’와 대응되는 ‘지극히 낮으신 하느님’이다.


이 책은 일종의 독특한 명상 훈련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을 탄생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 명상 속으로, 인간적인 친밀함 속으로 들어가, 그 행복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르 몽드>


이 책에서 보뱅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나열하거나 교훈을 전달하려고 하는 대신 성인의 삶에 끼어드는 사건과 장면들을 포착해 윤곽을 그리며 가볍고 정확한 터치의 언어로 그 안에 담긴 은총을 전달한다. 그리하여 짧은 숨결의 문장이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처럼 다가와 우리 안에 스며든다. (「옮긴이의 말」에서)



가난한 자들의 친구, 환경의 수호 성인 프란체스코
―진리는 가장 ‘낮은 곳’에


13세기의 성인 프란체스코가 21세기의 우리들에게 여전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지고 믿음과 종교적 신념을 삶에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세속적인 명예와 성공을 추구했지만 깨달음을 얻은 후 평생 청빈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사람들도 그가 전하는 말보다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삶 때문에 감명받아 뒤를 따랐다. 프란체스코는 평생을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기도하고 명상하며 ‘청빈’과 ‘형제애’를 실천하였다. 그의 그런 사랑과 믿음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만물에게까지 미쳤는데,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벽화 중 하나인 <작은 새에게 설교하는 프란체스코>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일찍이 자연과 조화를 중시했던 프란체스코는 오늘날 ‘환경의 주보主保’로도 불린다.


하느님 곁에서 짐승들은 이름과 상관없이 살았다. 그들 안에는 최초의 침묵과도 같은 무엇이 깃들어 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닮은 그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둘 사이를 방황한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새들에게 설교를 하며 바로 이 태초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인간은 그들에게 이름을 줌으로써 자신의 개인사, 삶과 죽음의 재앙 속에 그들을 가둔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을 이런 운명으로부터 해방시키며, 절대적인 것으로 되돌려 보낸다.(86쪽)



위기의 시대, 위안을 주는 따뜻한 이야기
―세상을 향한 신비롭고 은은한 사랑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 상황과 맞물려 한국 경제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황으로 살기가 점점 더 팍팍해졌고 ‘묻지마’ 살인, ‘생계형’ 범죄, 자살 등 나날이 범죄의 수위는 높아지고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이렇듯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현대인은 불안함과 공허와 결핍감,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린다. 오늘을 사는 것이 어제보다 더욱 상처 입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기쁨을 찾고 생명을 존중하며 자신을 치유하는 것. 신비롭고 은은한 성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생명에 대한 관심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오히려 잠든 이의 귓속에 대고 속삭이는 지극히 낮으신 분, 아주 낮은 목소리로밖에는 말할 줄 모르는 분이다. 한 편의 꿈. 참새의 지저귐. 프란체스코가 정복의 야망을 포기하고 고향 집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것으로 족했다. 그림자로 가득한 몇 마디 말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다. 하찮은 사건이 우리를 생명에 내어주며, 하찮은 사건이 우리를 거기서 떼어놓는다. 하찮은 사건이 만사를 결정한다.(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