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작지만 강력한 이웃사랑


이해인 수녀의 글방은 편지로 가득하다. 편지로 집을 지어도 될 만큼. 사람들은 그곳을 ‘향기 나는 우체국’ ‘편지로 가득한 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까운 친척과 지인들은 물론 전국에서, 해외에서, 감옥에서…… 이해인 수녀를 그리워하는 이들의 수많은 편지가 사랑과 기쁨, 슬픔과 위로, 축하와 감사의 이야기를 담고 해인글방에 도착한다. 또 이해인 수녀가 고운 손으로 꾹꾹 눌러 쓴 답장과 사랑의 소식을 담은 편지는 해인글방을 떠나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가 닿는다.


“편지를 손으로 쓰는 일은 소중한 사랑의 일”이라 말하는 이해인 수녀. “여행을 할 때도 색연필, 편지지, 고운 스티커 등의 편지 재료들을 늘 갖고 다니다 보니 가방이 가벼울” 틈이 없다는 ‘시인수녀’에게 편지는 ‘기도’이자 ‘사랑의 도구’다.


이해인 수녀의 신작 『사랑은 외로운 투쟁』(마음산책)은 수녀가 세상을 향해 띄우는 일 년 열두 달 편지다. 이 책은 이해인 수녀와 수녀원 소식을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10여 년 동안 보낸 편지를 월별로 묶은 것으로 1994년부터 해외에 있는 수녀들을 위해 만든 작은 소식지 <솔방울>과 1999년부터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해인글방 소식>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결 고운 평상심의 고갱이만 가려 뽑았다.


“큰일은 못하지만 시간 나는 대로 부지런히 편지 쓰는 일을 통해 작지만 소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보다는 편지나 엽서로 감사, 위로, 축하의 표현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 제게 편지는 수도원과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주며 자칫 좁아지기 쉬운 제 경험의 폭과 시야를 넓혀주는 창문이 되어줍니다. 여행을 할 때도 색연필, 편지지, 고운 스티커 등의 편지 재료들을 늘 갖고 다니다 보니 가방이 가벼울 때가 없습니다. 급할 땐 가끔 이메일이나 팩스를 이용하지만, 번거롭더라도 겉봉에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며 갖는 정성스러운 기쁨과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102p



‘명랑수녀’의 수녀원 생활 공개


‘시인수녀’이기 전에 ‘수녀’인 이해인의 수녀원 생활은 어떠할까?

이 책에서 이해인 수녀는 “수녀원에서의 잔잔한 생활나눔”은 물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수녀원의 풍경을 전해준다.


해인 수녀님이 계시는 수녀원에는 흰 나비들이 행복하게 산답니다.―정호승 시인

“흰 나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수녀원. 이 수녀원을 처음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수녀원의 그 밝은 분위기에 놀란다고 한다. 웃음기 없는 경직된 수도원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해인 수녀의 편지에서 만나는 수녀원은 ‘기도소리’와 함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이다. 연중피정, 첫서원, 부활축제, 성소주일, 성 베네딕도 축일 축제 등 수도원의 일정에 따른 수녀원 생활을 전하는 것은 물론 웃음이 끊이질 않던 설맞이 윷놀이 대회, 섬진강변 하얀 모래밭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던 가을 소풍, 성탄맞이 대청소, 천 포기나 되는 김장배추를 씻으며 싱싱한 기쁨을 맛보았던 김장준비 등 해인 수녀가 매일 마주하고 느끼는 수녀원 일상을 그만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또한 수녀원 안팎에서 직접 겪은 다양한 경험들, 해인 수녀가 발견한 아름다운 시나 밑줄을 그었던 좋은 글귀, 감동을 준 책, 묵상주제 등을 시와 글이 어우러진 부담 없고 편안한 편지글로 전하고 있어 솔직하고 꾸밈없는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아우수녀들의 청에 못 이겨 동요와 함께 귀여운 율동을 선보이거나, 산책하던 중 만난 무밭에서 하얀 무 한 개를 뽑아 먹으니 재미가 나서 자꾸만 뽑아먹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는 ‘명랑수녀’ 이해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편지글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더불어 “하늘빛 희망을 가슴에 키우는 달, 봄비를 기다리며 첫 러브레터를 쓰는 달,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파도로 달려가는 달, 오직 감사만으로 선물의 집을 짓는 달” 등 해인 수녀가 지은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의 고운 이름들로 여는 매달의 편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 년이라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독자들이 알고 싶은 모든 것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해인 수녀는 그만큼 많은 질문들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잠을 잘 때 어떤 옷을 입는지를 묻는 천진하고 엉뚱한 질문에서부터 불행의 극복법을 묻는 질문까지 수도자에 대해, 해인 수녀의 글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을 받는다.


책은 평소 독자들이 이해인 수녀에 대해 궁금해 했던 물음들을 여러 매체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가려 뽑아 각 장마다 질의응답을 곁들여 담았다. ‘해인’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묻거나 학창시절 장래희망, 시를 쓸 때의 특별한 방식, 수도생활 중 기억에 남는 추억, 수녀님의 한 가지 옷이 재미없지 않으냐는 등의 궁금증은 이해인 수녀에게 좀더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끈다. 또 글을 통해 만인의 ‘작은 위로자’가 된 이해인 수녀에게 살아가며 부딪치게 되는 ‘삶의 힘겨움’과 ‘죽음’에 대한 해인 수녀만의 답도 들을 수 있어 삶을 살아가는 작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은 외로운 투쟁입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얼마나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일 때가 너무 많아요. 양보하며 손해를 보는 어리석음의 용기 없이는 참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도 자주 경험한답니다. 사랑이 요구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늘 외로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외로움을 슬퍼하지 않고 겸손한 기도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좀더 빨리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책머리에」 중에서


이해인 수녀는 “행복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행복에는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외로움이 속 깊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외로운 투쟁”일 수밖에 없다. 해인 수녀는 지금도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 수많은 편지를 받고 또 쓰고 있다. 편지 하나하나에 담은 사랑과 기도가 빚은 소박한 일상의 노래는 “진정 사랑하면 삶이 빛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을 나날이 새롭게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매일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이해인 수녀의 ‘착해지는 편지’『사랑은 외로운 투쟁』은 메마른 삶에 “단순한 위로를 넘어 새로운 희망과 용기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