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아침 10만 명을 향해 노크하는 사람,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의 유물을 ‘쓰는’ 일
말 없는 것들의 묵묵한 다정함에 대하여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 7시면 국립중앙박물관의 레터 수신 신청자들의 메일함에는 새 메일이 한 통씩 쌓인다. 이름하여 「아침 행복이 똑똑」.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와 소장품을 소개하는 이 서비스의 구독자는 어느새 10만 명에 이르러, 박물관을 관람객들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을 쓰는 직업』은 이 레터를 만드는 사람,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 신지은이 경험한 박물관의 일과 사람, 유물에 대한 이야기다. 신지은은 유물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직접 글을 쓰기도 하고 때론 연구자나 전시기획자 들에게 글을 청탁하여 이 지면을 꾸리기도 한다. 「아침 행복이 똑똑」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박물관으로 이끌 수 있도록, 유물뿐 아니라 정원의 식물들, 일터의 사람들과 관객까지, 박물관 안팎을 두루 살피는 그의 살뜰한 시선은 말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돌려주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저자는 전문가이면서도 박물관의 표준어를 ‘보통 사람들의 말’로 삼고자 하기에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부드럽게 스미는 미덕을 갖췄다. 신지은에게 박물관을 ‘쓰는’ 일은 박물관을 둘러싼 말 없는 것들에 깃든 다양한 빛, 그 묵묵한 다정함을 읽는 과정이다. 동시에 연구자로서의 성장기이기도 한 『박물관을 쓰는 직업』 은 마음산책에서 펴내는 직업 에세이들 중 한 권으로서도 의미 있다. 

 

한곳에 펼쳐놓고 보니, 말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물들뿐만 아니라 정원과 복도의 식물들, 그리고 일로 만난 박물관 안팎의 사람들. 말 없는 것들에도 다양한 빛이 깃들어 있음은 박물관에서 일해온 몇 해 동안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내 마음을 살며시 쏟고 난 자리에 연하게 스미는 아롱아롱한 빛들, 일하면서 얻은 내 기억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 묵묵한 다정함에 대해 썼다._「책머리에」에서

 

 

“유물 뒤에 사람 있어요” 
박물관의 일과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 

 

박물관에서 잘 기획된 전시를 볼 때면 그 전시는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과정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전시 또한 수많은 실무를 거쳐 선보이기 마련인데 『박물관을 쓰는 직업』에서 독자들은 그 호기심을 잠시 해소할 수 있다. 전시 기획과 설치에 참여해본 저자의 경험 덕분에 생생히 들려줄 수 있는 것인데, 일례로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을 위해 싸늘한 전시실에서 패딩 차림으로 바닥에 벽돌을 하나하나 깔고 인조 잔디를 손수 심은 일화를 들 수 있다. 또한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효율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경험-박물관 사이트에서 ‘풍속도’라는 키워드와 ‘풍속화’라는 키워드를 연결해, 둘 중 하나만 입력해도 두 가지가 다 검색되도록 하는 것-은 모든 일의 뒤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자리하고 있음을 환기한다. 
물론 유물 곁에 머무는 사람들의 일상에 고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도에 동료들이 내놓은 책 더미에서 애타게 찾아 헤매던 도록을 우연히 구하기도 하고, 더위에 지친 한여름 시원한 풍경이 담긴 산수도를 보며 더위를 식히는 등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그중에서도 남송 시대 화가 마원馬遠의 화풍을 따라 그린 여름 산수도 하나는 성마른 마음을 착 가라앉혀주는 그림이다. 칼로 썩썩 베어낸 듯 날카로운 바위산 아래, 소나무 그늘에 걸터앉은 선비가 백로들이 오가는 얕은 물을 바라보고 있다. 무릎에 얹은 검은 고금古琴을 타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든 이유는, 아마 지금 막 새 한 마리가 소나무 우듬지를 박차고 날아오른 기척을 느껴서인지 모른다. 차 한 잔을 내어가기 좋은 타이밍, 뒤에서 지켜보던 시동이 재빨리 차를 젓는다. 안개가 서린 여름날이라 차 향기가 벌써 저 앞까지 퍼졌을까. 돌아보지 않았지만 선비의 얼굴에는 벌써 선선한 기쁨이 퍼져가고 있을 것만 같다. _60~62쪽 

 

 『박물관을 쓰는 직업』에서 눈여겨볼 것은 그가 한 명의 연구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이다. 학생 시절 예술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면접에서 고배를 마신 경험과 자기 자리가 없던 인턴 시절을 거쳐 문화재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가 거쳐온 시간은 여느 사회 초년생의 타임라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 스스로 “도자기로 치면 이제 막 물레에 올라간 흙덩어리 같던 시절”이라 일컫는데 그 시간에 그가 기댈 수 있는 것 또한 문화재였다.

 

모자합母子盒은 엄마합과 아이합이라는 뜻이다. 모합母盒 안에 여러 개의 작은 자합子盒이 담겨 한 벌이 되는 그릇이다. (…) 빛나는 이 자합을 보았을 때, 세상 어딘가에 있었을 이 합의 모합과 다른 자합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더 큰 그릇 안에 온전히 담기는 작은 그릇 여러 개가 눈길을 끌었다. 작은 그릇 하나하나에 담긴 마음들이 작지만 또렷한 팔레트처럼 나를 만들고 있었구나 깨달았다. 내 삶 자체가 아주 많은 합들을 채워나가는 더 커다란 합이 되면 되는 것이다.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된 모자합에 어떤 이름을 붙이는가는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세상이 알아서 해줄 일이다._231~233쪽 

 

 

옛것에 담긴 마음을 찾아서 
덩그러니 놓인 유물 속에서 자신 안의 시간을 발견하다 

 

<금동 반가사유상>이 국보 몇 호라는 둥, 이 책에는 유물에 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은 드물다. 저자는 그저 유물을 찬찬히 보고 자신의 마음이나 기억을 포개어보거나 옛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얼마 전 BTS의 리더 RM이 SNS에 올리며 화제가 된 <금동 반가사유상>에 대해서도 저자는 불상의 옷차림 등 그 양식을 설명하되 이런 정감 어린 비유로 둘의 차이를 짚는다.

 

“78호는 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조리 있게 이야기할 것 같은 인상이라면, 83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를 실컷 들어주고는 ‘그래, 잘했네’ 하고 싱겁게 웃어줄 것 같은 모습이다. 똑 부러지는 조언이 필요할 때는 78호 앞으로,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는 83호 앞으로 가고 싶어진다.”_128~129쪽 

 

위쪽과 아래쪽을 붙여 이음매가 보이는 <달항아리>에 대한 비유는 어떤가. “겨울에 붕어빵을 살 때 바삭한 가장자리가 많이 달려 있으면 신이 나는 것처럼, 보기에 덜 말끔한 그 부분이 오히려 달항아리에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조선 백자 같은 공예품에서 김정희의 <세한도> 같은 회화, 영조가 내린 현판까지 저자가 아끼는 유물들을 골라 소개한 3부 「옛것에 담긴 온기」를 보노라면 그에게 유물을 보는 시간은 옛 사람을 만나는 시간 여행이기도 하고, 힐링 타임이기도 하며, 성장판이 열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각자의 자리를 돌아보게 한다. 박물관을 ‘쓰는’ 일이 지금을 쓰는 일인 이유다. 

 

이 세상에는 물건에 무슨 마음이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물건이기에 만든 사람, 사용한 사람, 간직하고 고친 사람의 마음이 다 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의 눈길과 손길이 닿은 물건에 깃든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울처럼 지금의 자신이 비친다.
그러므로 유물에 담긴 시간을 바라보는 이는 자기 안의 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유물이 놓인 공간들 속에서 나의 자리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박물관을 쓰는 일도 그러하다. 열 손가락으로 헤아려지지 않는 수백, 수천 년 너머의 옛날로 출발해도, 글의 끝은 늘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이 얼마나 애틋한지로 돌아오곤 한다._「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