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로커의 아이콘, 패티 스미스가 펼치는 꿈의 풍경
“두 사람의 당신이 있어요.
세상을 걷는 당신과 꿈을 걷는 당신”


명실상부한 여성 로커의 아이콘이자 음악, 미술, 논픽션 등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 예술가 패티 스미스. 1975년 앨범 <호시스(Horses)>로 데뷔한 그는 올해 2021년 1월에는 런던 피카딜리라이트에서 생방송되는 CIRCA(디지털 아트 플랫폼)에서 공연을 하고, SNS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면서 칠십대인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달에서의 하룻밤』은 『M 트레인』 『몰입』에 이어 마음산책에서 펴내는 패티 스미스의 세 번째 산문집이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패티 스미스 특유의 문체가 드러나는 『달에서의 하룻밤』에서 그는 칠순을 맞이하면서 겪었던 한 해 동안의 방황과 고뇌를 꿈결처럼 아름답게 기록한다. 지구적 환경 위기, 미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 오랜 친구들의 노쇠와 죽음을 겪으면서 패티 스미스는 자신의 실존을 돌아보고, 현실보다 더 생생한 꿈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모텔의 간판이 말을 걸면서 시작되는 꿈속 세계에서 그는 시시각각 눈 색깔이 바뀌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만나고, 해변이 사탕 포장지로 뒤덮이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한다. “마음의 새벽에서 발원한” 듯한 꿈속 세계에서 불가능했던 일이 일어나고, 깊어진 감정들은 그의 앞에 이미지로 현현한다. 이렇듯 패티 스미스는 마음속 꿈의 여행과, 미국 서부를 다녔던 실제의 여행기를 섬세한 시적 언어로 결합해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뿐 아니라 패티 스미스가 세계 곳곳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도 본문에 수록되어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 사막으로, 켄터키의 농장에서 소중한 멘토가 입원한 병실로 우리를 인도하며 패티 스미스는 사실과 허구를 시적으로, 잊을 수 없이 뒤섞어 서부의 풍광과 꿈속의 풍경을 융합한다. (…) 스미스는 일생의 새로운 10년으로 넘어가며 아픔을 달래는 향유 같은 이 책을 독자에게 선사했다. 그녀의 지혜, 위트,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단단한 희망을.
-미치코 가쿠타니(『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



패티 스미스의 달콤씁쓸한 자각몽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 삶을 살았으니까”


한때 청춘과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패티 스미스. 그가 칠순을 맞이한 해는 그에게 절망감을 준 한 해였다. 책의 원제인 ‘Year of the Monkey’는 바로 그해, 불길했던 ‘원숭이띠의 해’를 의미한다.
패티 스미스의 예술적 동지이자 40년 넘게 친구였던 뮤지션 샌디 펄먼이 뇌출혈로 의식을 잃자, 그는 샌디와 필모어공연장에서 연주했던 추억을 홀로 곱씹으며 샌디가 꿈꾸었던,  「메데이아」를 각색한 오페라를 떠올린다. 또한 루게릭병에 걸려 투병하는 친구이자 극작가 샘 셰퍼드가 휠체어를 탄 것을 보며 과거에 그의 팔에 매달렸던 “현기증 나는 감각”을 안타깝게 기억한다. 세월 앞에서 그가 향유했던 관계와 삶들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정치적 분열은 최악의 대통령 선거를 낳았으며, 이민자들에 대한 배제와 혐오, 지구적인 환경 문제까지 그를 비탄에 잠기게 한다. 그러나 그는 글로 짜낸 깊은 꿈속 세계에서 고통을 견디는 힘을 찾는다.
꿈속 세계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곳으로 패티 스미스를 이끈다. 이를테면 미국 대선 결과에 좌절하고 한밤중 거리를 걷던 그는 갑자기 시공간을 초월해 반에이크의 작업실로 가서 그림 작업의 정확성을 감동적으로 “목격”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또한 해변이 사탕 포장지로 뒤덮이는 광경을 보고 그 실체를 알기 위해 탐정처럼 증거를 모은다. 오션비치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인물 어니스트는 미래를 예언하기도 하고, 패티 스미스를 사막 한복판에 남겨 두었다가 어느 날 술집에서 마주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패티 스미스는 꿈과 현실을 부단히 오가면서 상실과 절망을 회피하지 않고 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예술가로서 그것을 표현해냈다.


패티 스미스는 늙음에 딸려 오는 슬픔도, 상실도, 외로움도 해결하거나 극복하려 들지 않는다. 관조하고 곱씹을 뿐이다. 다만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실행함으로써, 패티 스미스는 그 뼈저리게 시린 외로움, 이상하고 혹독한 노년의 시련을 노을처럼 오묘한 빛으로 채색하고, 상처 입고 잔해만 남은 삶일지언정 여전히 아름답고 의미 있음을 선언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우주의 어느 공간을 할당받았는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샌디의 운명도 묻지 않았다. 샘의 운명도. 천사들에게 기도로 간구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그런 건 금지된 일이다. 나는 그걸 아주 잘 안다. 사람은 한 목숨을, 혹은 두 목숨을 요청할 수 없다. 장담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들 각자의 심장에 점점 더 강인한 힘이 붙기를 바라는 희망뿐이다.
-본문 144쪽



열정을 품고 삶을 관조하는 예술가의 아름다운 노년
자신을 지탱해준 예술에 바치는 헌사


어느덧 칠십대가 된 패티 스미스는 개인적인 상실과 함께 더 나빠져가는 세상을 관조하며 끊임없이 그것을 기록한다. 절친한 친구가 죽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쉬이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 공간, 예술에 대해 환기하고 꿈꾸며 계속 쓰는 것이다. 패티 스미스는 예술가로서 ‘분주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살아 있다는 일, 그 일에 최선’을 다한다. 독자는 어디서나 예술을 찾아내는 노년의 예술가, 패티 스미스의 꺼지지 않는 열정을 만날 것이다.
또한 『달에서의 하룻밤』에서 꿈속 세계의 모티프가 되는 예술 작품들을 보면 패티 스미스의 예술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패티 스미스는 반에이크의 헨트 제단화를 향한 특별한 애정을 내비친다. 그는 헨트 제단화 외부 패널의 표면을 직접 만져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실제로 구현한 예술가에 대한 경이감에 사로잡혔다고 토로한다. 나아가 암울한 현시대를 떠올리며, 제단화의 부분 중 <신비한 어린양에 대한 경배>에 있는 인류의 죄를 대속한 어린양의 “자비의 성혈이 무한하지 않아서 언젠가 흐르지 않게 될 날”에 이르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소설가 로베르트 볼라뇨에 대한 패티 스미스의 애정도 각별하다. 어니스트와 볼라뇨의 소설 『2666』의 「범죄에 관하여」 부분에서 소노마 살인사건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를 토론하기도 하고, 어니스트에게 볼라뇨의 집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한다. 샌디 펄먼의 앨범 <이마지노스(Imaginos)>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포함한 수많은 영화와 음악, 셰익스피어, 페르난두 페소아, 앨런 긴즈버그, 고고스의 보컬 벨린다 칼라일까지 독자는 그의 예술 세계를 이룬 작품과 예술가들을 발견할 것이다.


페소아가 가졌던 책들이 그의 글보다 오히려 더 페소아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창문처럼 느껴진다. 페소아에게는 각자 주어진 이름을 가지고 글을 쓰는 수많은 페르소나가 있었지만, 이 책들을 사고 사랑했던 건 페소아 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소소한 깨달음이 내겐 묘하게 흥미로웠다. 이 작가는 각자의 삶을 살고 각자 자기 이름으로 글을 쓰는 독립적 캐릭터들을 발전시킨다. 무려 75명이나 되는 이 캐릭터들에게는 별도의 모자와 코트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참된 페소아를 알 수 있을까? 그 해답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의 책들, 완벽하게 보존된 그만의 서재.
-본문 141쪽


수백 수천 명의 소녀와 소년이 벨린다 칼라일의 움직임을 따라 <위 갓 더 비트(We Got the Beat)>를 부르며 탁 트인 시계(視界)를 물밀 듯 밀려들어 채운다. 그리고 무기를 내려놓은 병사들과 제 위치를 벗어난 해군들과 범죄 현장을 떠난 도둑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화려한 뮤지컬의 무대 정중앙을 차지한다. 권력도 없고, 인종도 없고, 종교도 없고, 배제도 없다. 그리고 머릿속을 질주하는 이 광대한 장관과 함께, 나의 일부가 공중으로 도약하고 사뿐사뿐 스텝을 밟으며 길을 따라가서 이 장면에 등장하고, ‘생명의 책’의 넘어가는 페이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천사들처럼 무한히 늘어나는 코러스에 합류한다.
-본문 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