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거장 스팅 자서전, 국내 최초로 발간하는 스팅의 책
‘마음산책 뮤지션 시리즈’ 두 번째 출간작


자신만의 음악 언어로 수많은 명곡을 남긴 싱어송라이터 스팅의 자서전을 선보인다. 국내 최초로 발간하는 스팅의 책인 동시에 『에릭 클랩튼』에 이은 ‘마음산책 뮤지션 시리즈’의 두 번째 출간작이기도 하다.
대중의 기대를 절대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실험을 거듭하며 특별한 길을 걷고 있는 팝 스타 스팅. 최근 영국 <더 메일 온 선데이>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한 스팅은 우리 돈으로 3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껏 환경보호와 인권운동에도 힘써온 스팅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더 라스트 십>을 2014년 가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예정이기도 하다. 바로 그가 음악인으로 성장해온 자신에 관한 소중한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 짧은 노랫말만으로도 전 세계를 매료시켜온 스팅은 이 책을 통해 난생처음 긴 호흡의 글을 선보인다. 2009년 발매한 앨범 ≪If on a Winter’s Night≫에 따로 에세이를 실을 정도로 스팅의 글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바, 이 책을 통해 정련된 문장력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고든 매슈 섬너’로 불리던 스팅의 유년 시절부터 밴드 ‘폴리스’로 성공하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세계적인 가수의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음악이라는 출구를 통해 슬픔을 달래야만 했던 한 소년의 ‘성장담’에 가깝다. 스팅 또한 책 앞머리에 이렇게 밝히고 있다. “여느 자서전처럼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유년기와 젊은 시절의 나를 이해하고자 할 때 지금도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특별한 순간과 사건,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자 했다.” 자신을 팝의 거장으로 키워낸 어린 시절의 순간들,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를 통해 스팅은 음악으로 이루어진 한 예술가의 성장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한 소년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성장의 장면들


 이 책의 원제는 ‘Broken Music’이다. 스팅이 자신의 인생을 망라한 자서전의 제목을 왜 ‘Broken Music’이라고 지었는지 알 만한 대목이 도입부에 나온다.

 

천상의 화음은커녕 지옥의 소리가 방 안 가득하지만, 한참 그렇게 피아노를 두들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치미는 울분을 피아노로 풀지 못했다면 삐딱하게 자라서 지금쯤 버스 정류소 기물을 때려 부수거나 울워스에서 고물을 훔치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쪽으로 끈이 있었다는 건 신만이 아신다. 내가 왜 미친 듯이 피아노를 두들겼는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알았다면 이 끔찍한 불협화음을 듣는 게 오히려 두 분께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분은 아무것도 몰랐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몰랐다. (…)
“음, 조금만 부드럽게 연주해주면 안 될까? 그런……”
할머니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런…… 깨진 음악 말고.”
―68쪽


이 이야기 속의 소년은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살며 무뚝뚝한 아버지를 도와 아침마다 우유 배달을 한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 곁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에는 “세계 여행을 한다, 식구 많은 집의 가장이 된다, 한적한 시골의 대저택에서 산다, 부자가 된다, 그리고 유명해진다”라며 자신의 미래를 상상한다. 피아노로 아무렇게나 ‘깨진 음악’을 연주하던 소년의 손에 기타가 쥐여지자 소년은 “꽁꽁 밀폐된” 자신만의 세계로 “도망”친다.
그 후 스팅은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일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는다. 한동안 교사로 일하며 밴드 활동을 병행하지만 결국 다시 자신만의 “탈출구”였던 음악에 완전히 투신한다. 일을 그만두겠다는 스팅을 만류하던 교장 수녀에게 그가 던진 대답은 그 자체로 음악에 대한 충일하고도 순수한 고백이다.   
    
아기가 곧 태어나는데도 교직을 떠나겠다는 결심이 확고하다는 걸 확인하자 수녀님이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화가 치민다는 듯이 수녀님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그러면 연금도 못 받습니다.”
내가 창문 밖 운동장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침묵을 지킨다. 승합차와 화물차가 남쪽으로 쌩쌩 내달린다. 잠시 뒤 내가 입을 연다.
“수녀님, 죄송합니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243쪽


성장의 순간들이 책 도입부의 주를 이루지만, 이 책은 1987년 브라질에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모사 뿌리 가루로 만든 브라질 원주민들의 전통 약물 ‘아야와스카’를 접하기 위해 도시 외곽 밀림까지 찾아간 스팅은 그곳에서 ‘고든 매슈 섬너’라는 한 사람의 정수를 이루는 핵과 비로소 마주한다. “일평생을 비탄 속에서 산 우리 아버지, 그리고 슬픔에 젖은 아름다운 우리 엄마.” 자신의 불행에만 갇혀 있던 아버지와 사랑과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했던 엄마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불행한 유년 시절을 지나온 스팅은 슬픔과 분노를 음악으로 달래왔다. 그 또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한 소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한참 내려다본다. 내 손하고 이렇게 똑같은데 어째서 지금껏 몰랐을까?
“아버지, 아버지 손하고 제 손이 똑같이 생겼어요. 보세요.”
나는 다시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된다. 아버지가 당신 손과 내 손을 번갈아 쳐다본다.
“정말 그렇구나. 하지만 네가 나보다 손을 훨씬 더 잘 썼지.”
정적이 감돈다. 울음이 목울대까지 차오르면서 숨이 컥 막힌다. 아버지가 이렇게 칭찬해준 적이 언제던가, 나와 내 일을 인정해준 적이 언제던가, 나의 성공과 희생을 알아준 적이 언제던가,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뇌리에 펼쳐진다. (…) 내가 아버지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고 속삭인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다고,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393~394쪽


스팅은 후에 부모님을 연달아 잃고도 이런저런 핑계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진정한 애도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루어진다. 애도 후에야 비로소 “깨진 조각들을 어울러 제자리에 맞추어놓았다고 믿고 싶다”라고 말하며 이 기나긴 기록의 끝을 맺는다.   



시종일관 넘치는 유머와 위트
슬픈 노래를 경쾌하게 부르는 그의 음악처럼


스팅은 자신의 깊은 속내를 풀어놓지만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무명 밴드로 활동하던 시절 리허설 시간조차 얻지 못했을 때도, 단 여섯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 불렀을 때도, 커피를 리필해주려는 종업원에게 돈이 모자라 커피를 두 잔 마실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을 때도 그는 여유를 잃지 않고 특유의 자조적인 유머를 선사한다.
제리 리처드슨을 만나 ‘마지막 비상구’의 한 멤버로 공연을 다녔던 이야기, 스튜어트 코플랜드, 앤디 서머스와 ‘폴리스’를 결성했던 장면은 스팅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 자체로 영국 팝 음악의 역사이기도 하다. 마일스 데이비스나 앨런 프라이스 등과의 일화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또한 첫 번째 아내를 만나 첫 아이와 대면했던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지금의 아내 트루디 스타일러와 처음 만났던 때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마음의 형상’을 응시하게 만드는 듯한 음악을 만들어온 스팅. 그의 특별한 감성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음악은 한 사람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이 책은 전한다.


 

추천사

 

스팅의 음악은 숨결과 같다. 오랫동안 머금고 있다가 조용히 내뱉는 숨 같은 노래들을 그는 폴리스 시절부터 내내 만들고 불러왔다. 탐구를 멈추지 않되 절제를 놓지 않는 음악은 성찰의 프리즘을 거쳐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공기처럼 물들여오곤 했다. 음악과 철학은 애초에 그에게는 구분이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스팅의 자서전은 그 생각을 확신으로 굳힌다. 스팅은 자신의 인생의 어떤 순간들을 빛도 어둠도 없이, 한없이 담백하게 묘사한다. 시와 문학, 음악이 삼위일체 되는 진기한 경험을 책을 읽는 내내 할 수 있었다. 음악이란 그저 소리의 발현이 아닌 인생과 철학의 투영임을 스팅은 일깨워준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