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을 향한 집요한 애착과 열정,”
두려움과 맞서는 인간의 성공과 좌절을 그린”
제임스 설터 장편소설 『고독한 얼굴』 출간

“당신이 읽어본 적 없는 위대한 작가”(<에스콰이어>), “미국 문학의 잊힌 영웅”(<더 가디언>). 2013년 장편소설 『올 댓 이즈』를 발표하고 마침내 상업적 성공과 대중적 명성을 동시에 거머쥔 제임스 설터는 당시 독자들에게 이런 수식들로 설명되었다. 60여 년에 이르는 작품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소설은 개정판을 제외한 장편 여섯 편과 단편 두 편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올 댓 이즈』 출간까지 무려 34년에 이르는 소설 공백기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위대한 작가’라든가 ‘미국 문학의 영웅’이라는 칭호는 설터가 미국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게 한다.
마지막 소설을 발표하기 34년 전 출간한 『고독한 얼굴』은 제임스 설터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자 마음산책에서 출간하는 그의 열 번째 책으로, 프랑스 샤모니에서 알프스 고봉들을 오르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주인공 랜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설터는 1976년 ‘고독한 히피’로 이름을 떨쳤던 등반가 게리 헤밍의 삶과 공적을 투영해 산악 등반에 관한 각본을 쓰지만,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주인공이 너무 과묵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그대로 사장될 뻔한 스토리는 출판사 ‘리틀, 브라운’의 편집장이던 로버트 지나의 설득 끝에 1979년 소설로 빛을 볼 수 있었다. 암벽등반에 자신을 투신하는 한 남자의 여정은 수준 높은 등반 묘사로 일반 독자는 물론 산악인들에게서도 “아웃도어 라이프에 관한 최고의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강렬하고 슬프고 지혜롭고 인정미 있는 굉장한 소설. 설터의 산문은 희귀하고 놀랍다. (…) 진정한 영웅이 나오는—게다가 작가 자신이 진정한 영웅인—소설을 읽는 것은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_존 어빙(전미도서상 수상 작가)

 

“산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영웅으로 추앙된 인간에 관한 끈기 있는 통찰’

캘리포니아에서 교회 지붕 청소 일을 하는 버넌 랜드에게는 꿈이나 목표랄 것이 없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던 일상에 염증을 느낄 무렵, 그는 우연히 과거에 함께 산을 오르던 친구 캐벗을 만나면서 삶의 전기(轉機)를 맞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암벽을 오르던 기억은 잊고 있던 긴장감과 전율을 일깨운다. 그렇게 샤모니로 향해 다시금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의 등반에 성공하면서 랜드의 명성은 점차 확고해진다. 한편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아이거에서 젊은 등반가 브레이에게 무리한 등반을 강요하다 결국 그가 죽자 미국으로 돌아간다. 상실감에 시달리던 랜드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카트린과도 헤어진 뒤 홀로 등반을 시작하고, 드뤼에서 이탈리아인 조난자 두 명을 구하면서 산악계의 영웅적인 인물로 거듭 회자된다. 세간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으면서도 미묘하게 그 상황을 즐기던 랜드는 다시금 그랑드조라스의 북벽인 워커 등정에 도전한다.

 

항상 가장 먼저 나서는 것이, 앞장서는 것이 운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삶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 사람은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최초의 인간이다.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든 남보다 앞서 배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힘을 주고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곳의 어둠 속에는 사랑과 질투가, 선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_188쪽

 

『고독한 얼굴』은 표면적으로는 등반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면에는 산을 향한 한 인간의 순수할 정도로 집착적인 욕망, 그로 인한 성공과 좌절을 다룬다. 랜드는 학생으로도 군인으로도 실패한 사람으로, 고산 암벽등반에는 타고난 자질을 갖춘 인물이다. 본인조차 까닭을 알 수 없는 지독한 열망을 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치 그 자신이 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등반에 몰두한다. 오로지 등반에만 삶의 의미가 있다는 듯한 태도는 랜드가 만난 여성들에게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 환경과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며 계속해서 상승할 때에야 그는 더할 나위 없는 희열과 해방감을 만끽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랜드가 강박적으로 산을 오르는 과정만큼 눈여겨볼 것은 그를 둘러싼 언론의 관심과, 대중의 반응에 따라 변해가는 심리 상태다. 캘리포니아에서 샤모니로 넘어간 초기, 랜드의 가치관은 “우리가 해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나머지는 그들의 상상에 맡기고 말이야”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등반이라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러나 여러 고산을 등정하고 구조대원들조차 포기한 조난자들을 구하면서 영웅으로 추앙을 받자, 그는 자신이 멀리하고자 했던 명성을 갈구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설터는 인간의 본성이 외부적 요인에 따라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 『고독한 얼굴』에서 명료하게 보여준다.

 

절제된 문장과 스케치 같은 묘사
강렬하고도 매혹적으로 담아낸 또 다른 세계

책의 원제인 『Solo Faces』는 제임스 설터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우뚝 선 거대한 암벽일 수도 있고, 산악인들의 무한 경쟁에 따른 이기심일 수도 있고, 무아지경에 빠져 산을 오르는 등반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번 한국어판 제목은 혼자 등반하는 데서 위안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는 한 인간의 흥망과 그에 따른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고독한 얼굴』이 되었다.

 

『고독한 얼굴』에는 랜드가 캐벗과 함께 드뤼 서벽을 오르는 압도적인 장면부터 시작해, 여러 산악 등반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나온다. (…) 그리고 문체! 무엇보다도 많은 평론가들이 헤밍웨이를 연상케 한다고 말하는 설터의 문체가 햇빛을 받은 몽블랑 산봉우리의 흰 눈처럼 빛난다. _286쪽, 「옮긴이의 말」

 

한편 설터는 이 책의 각본을 준비하며 앞서 말한 게리 헤밍의 등반 궤적을 면밀히 더듬어가는 것은 물론, 실제로 여러 등반가와 어울리고 그들과 동행하여 고산 등반을 연구했다. 경험에서 우러난 경치와 등반에 대한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고 구체적인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장들이 선사하는 생의 강렬한 순간들은 설터를 기다려온 독자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카뮈와 생텍쥐페리를 떠올리게 할 아름답게 쓰인 책. 이 작품은 순수에 대한 묘사의 전형이다. _마이클 더다(퓰리처상 수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