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이별, 노년 등 삶의 변화를 ‘끌어안기’
일상의 균열을 외면하지 않고 감각하는 글쓰기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방송 프로듀서 겸 진행자 로르 아들레르
국내 첫 번역되는 그의 산문

 

마음산책은 ‘끌어안기’라는 이름 아래 프랑스 작가 로르 아들레르의 산문 두 권 『노년 끌어안기』와 『상실 끌어안기』를 펴냈다. 로르 아들레르의 산문 두 권을 ‘끌어안기’라는 키워드로 특별히 꿰어 선보이는 것은, 이별, 죽음, 노화 등 삶에서 부닥치는 상실의 경험을 일상 안으로 ‘끌어안는’ 사유를 담은 산문의 주제 때문이다. 
저자 로르 아들레르는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한나 아렌트, 시몬 베유 등의 전기를 썼으며 특히 뒤라스의 전기로 프랑스의 5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또한 공영 라디오 ‘프랑스 퀼튀르’에서 40년 동안 프로듀서 겸 진행자로 일했고, 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도 라디오 채널 ‘프랑스 앵테르’에서 문화 예술인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푸른 시간L’heure bleue>의 진행을 맡고 있다. 이처럼 출판과 방송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로르 아들레르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레지옹도뇌르훈장을 수상했다. 
『노년 끌어안기』와 『상실 끌어안기』는 각각 노년과 아들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살아 있다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노년’, 그리고 삶에서 더없는 불행일 어린 아들의 ‘죽음(상실)’에 대해, 저자는 그만의 통찰을 담아 써 내려간다. 『노년 끌어안기』에는 노년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아니 에르노, 시몬 드 보부아르 등 프랑스 지성들의 목소리 또한 담겨 있으며, 『상실 끌어안기』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곡진한 ‘애도 일기’다. 노년과 상실을 어떻게 삶으로 받아들이는지, 세상과의 화해는 과연 가능한 것인지 로르 아들레르의 산문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글쓰기
17년 만에 솟아난 기나긴 추모이자 애도 일기

 

『상실 끌어안기』는 생후 9개월의 아들 레미를 병으로 떠나보낸 어머니 로르 아들레르의 회고록이다. 아이가 죽은 지 17년이 되던 날, 우연히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저자는 한밤중에 불쑥 이 글을 써 내려갔다. 황홀했던 임신 기간과 태어난 아이와 함께한 행복했던 순간들부터 아이의 오랜 투병생활 그리고 마지막까지. 더없이 생생하고 진솔한 고백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그 광경을 눈앞에 둔 듯, 아이를 잃은 엄마의 애도에 함께 저릿한 마음으로 동참하게 한다. 질서 정연하게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긴 채 파편들로 제시되는 그의 문장을 읽다 보면, 말과 말 사이 공백에 묻어둔 슬픔이 절규 없는 비명이 되어 들려온다.
아들에게 닥친 불행을 그의 곁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껴온 저자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기억들을 풀어놓는다. 품에서 떨어진 채 기계와 주삿바늘로 연결된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엄마와 함께 있지 못했다. 아이와 엄마의 사이를 갈라놓으면서도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던 의사들, 아이의 물건들을 병실에 둘 수 없다며 돌려보내던 간호사들이 아이의 곁을 차지했다. 저자는 지금도 아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갈아입곤 했던 멸균복의 감촉, 면회 시간이 끝나 병실에서 나올 때마다 바라본 흐린 하늘, 그리고 마지막 순간 병원 복도를 비추던 햇살과 병동에 흐르던 침묵을 기억한다.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어도 생생히 적을 수 있을 만큼 선연한 기억은 상실의 고통이란 무엇인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지를 전해주며, 그 가운데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통이 누구라도 공감할 보편적인 고통으로 번져가는 과정을 목격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상실감을 표현해낼 말이 없어도 결국 말하게 되는 이 정서적 추모식에서, 초대된 독자들은 저마다 겪은 상실의 기억을 떠올리며 더불어 타인의 고통까지 내면으로 끌어안는다.

 

비극의 주인공들에게는 시간이 정지되는 것 같다. 물론 삶은 계속된다. 현재를 저축할 수는 없다. 때로는 미래를 믿고 미래를 희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너무도 부당한 일을 견뎌내도록 운명이 지목한 이 공동체, 말 없고 부끄러움 많은 일가족인 우리는 여전히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상태였다. 우리 기억 속의 상처들은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122쪽

 

 

내가 아이에게 준 생명이
내 안에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아들 레미는 로르 아들레르에게 신의 깜짝선물 같은 존재였다.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던 수많은 의사들의 단언을 이기고 얻은 아이, 저자는 그 임신 기간을 ‘황홀했다’고 표현한다. 그는 배가 나온 모습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달라붙는 옷을 입어 몸의 실루엣을 드러냈다. 임신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과정보다는 불가피하고 피로하고 모든 의미에서 무거운 단계로 인식하던 시절이었지만, 아들레르는 임신 그리고 스스로의 ‘여성성의 변화’ 안에서 정신적, 육체적 힘을, 무한한 해방감을 느끼곤 했다.  
아이를 품은 작은 요새가 된 기분으로 배 속의 아이와 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주고받던 시간이 끝나고,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한 몸처럼 서로의 곁에 있었다. 코와 코, 입과 입, 배와 배를 맞대고서 기쁨에 겨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주 잠깐 떨어져 있던 틈을 타 불행이 끼어들어 그들을 영영 갈라놓았다. 생후 9개월의 어린 아기인 레미는 ‘급성 호흡부전’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후 마지막 순간까지 집으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부푼 배를 앞으로 내민 채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나 자신이 하나의 바위로 만들어진 것처럼 강하고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둥근 형체가, 검고 밀도 높은 작은 입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 무엇도 내게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야생적으로 또 야만적으로 아이를 품고 있다는 느낌, 처음으로 원래의 나보다 강해졌다는 느낌, 시작을 약속하는 저 원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들어가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2쪽

 

“우리는 모두 똑같은 운명을 가진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로르 아들레르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살아야 한다는 운명이다.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다. 그러나 그 삶은 변화하는 시간이 아닌, 정지된 채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삶이다. “우리 기억 속의 상처들은 여전히 입을 벌리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마치 비극 속 주인공들에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책의 마지막 장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이후를 산다는 건”으로 시작되는 발화는 반복의 움직임 가운데 서로 공명하며, 듣는 이들에게 진실한 울림을 전달한다. 이후에도 그 이후가 있다면, 그 이후를 산다는 건 “불안의 장막이 낮의 빛을 가린 어둠 속을 사는 것”이다. ‘살아야 한다는 운명’ 앞에 불행을 나눠 가진 우리는 모두 속수무책으로, 상실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이후를 산다는 건 죽음이 버린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164~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