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전적으로 믿어버린 인물들의 비극이 펼쳐진다” 

불안을 연주하는 작가, 최정화의 신작 ‘짧은 소설’


일상 속 균열과 관계의 파동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작가 최정화의 짧은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인 최정화는 등단할 당시 “독자들이 ‘최정화’라는 이름을 특별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라는 찬사를 받으며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 후 소설집『지극히 내성적인』 『모든 것을 제자리에』, 장편소설『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등을 통해 기대에 부응해온 최정화는,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을 통해 짧은 소설에서도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단편보다 더 짧은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의 내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한층 더 밀도가 높다. 평온한 듯 보였던 일상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익숙한 듯했던 가족과 연인 관계는 기실 낯설기 그지없다는 서늘한 사실을, 최정화만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간다.

16편의 이야기가 수록된 최정화의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은 마음산책 짧은 소설 시리즈 열한 번째로 출간되었다. 마음산책은 그동안 박완서의 『세 가지 소원』을 필두로,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 이기호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김숨의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이승우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 김금희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손보미의 『맨해튼의 반딧불이』, 백수린의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정지돈의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박서련의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등을 통해 단편보다 더 짧은 소설과 그림을 한데 엮어 문학을 읽고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왔다.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은 다양한 기업과 작업을 하며 작품 세계를 넓혀온 최환욱 일러스트레이터의 개성적이고 디테일한 그림이 더해졌으며, 보다 감각적인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당신은 그런 적이 없습니까?”

기이한 순간을 맞닥뜨린 인물들이 보여주는 마음의 해부도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에는 다양한 강박에 시달리거나 묘한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인물들의 강박 혹은 사건에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종의 초현실주의 영화처럼, 환상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강박적인 인물들은 그 사건을 맞닥뜨린다. 

「17번 테이블」에는 아내가 단골손님과 바람이 나면서 이혼한 ‘나’가 나오는데, 그는 단골손님이 자주 앉았던 17번 테이블에 집착하며 매일 밤 가게 문을 닫은 후 그 테이블에서 늦도록 술을 마시고, 그럼으로써 현재의 결혼 생활마저 서서히 망가뜨린다. 


그 일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과거를 되새기는 일은 매번 새롭게 나에게 타격을 입히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의 삶이라고 느낍니다. 그게 나라고, 어느 한구석도 어긋나는 데가 없이 나 자신과 딱 들어맞는 나라고요.

_「17번 테이블」 중에서


불가해한 사건은 짧은 소설 「이웃」에서 잘 드러난다. 열여섯 가구가 사는 ‘개미마을’이라는 작은 빌라에 입주한 ‘나’는, 303호에 사는 이웃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이웃은 지난밤 ‘나’의 전화통화 내용을 언급하는가 하면, 창문 너머로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빌라 앞 공터에 나와 빨래를 널고 평상에서 낮잠을 자며, 자신의 생활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방식으로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도 한다. ‘나’와 이웃 사이에는 분명히 벽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 그리고 이웃은 이러한 ‘나’의 기분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불쾌한 감각. 최정화는 이러한 긴장감을 조금씩 고조시키며 ‘나’와 이웃을 마주하도록 한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기분이 들 수 있어요. 난 이 빌라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을 봤으니까요. 그 사람들 중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 스트레스가 커지면 없는 것을 보기도 한다고요. 들린다고요. 당신이 본 것에 집착하면 안 돼요. 들은 것에 집중하지 말아요. 보인다고 해서 실재한다고 믿으면 안 됩니다. 들린다고 대꾸해선 안 된다고요.

_「이웃」 중에서


기이한 사건들은 인물이 느끼는 불안과 맞닿아 있으며, 인물들이 직조해내는 불안은 나아가 삶의 모순을 보여준다. 인생이란 질서정연하거나 논리적으로 짜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최정화의 소설 속 인물들은 끊임없는 불안과의 사투를 통해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내가 그랬잖아요. 보인다고 다 진짜가 아니라고”

삶의 진실을 파고드는 건조하고 통찰 어린 시선


강박과 불안에 사로잡힌 듯 보이는 소설 속 인물들은, 그렇지만 마냥 히스테리적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다소 건조하게 던지는 관계에 대한 통찰 어린 한마디 한마디는 묵직하게 와닿는다. 이는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타인을 대함에 있어 서툴고, 어색하고, 때론 무리하는 모습들. 즉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대체로 연민이 어려 있다.


왜 삶이 꼭 격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뜨거운 것이 아니면 거짓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가 부담을 느낄 만큼 가까이 갔을까. 실수를 하고 이상한 모습을 보거나, 보여야 안도했을까.

_「잔루이지 보누치라는 남자」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짧은 소설 중에는 실존 인물인 임현, 최민우 작가 두 명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 있다. 실제 모습과 소설 속 캐릭터를 상상하는 재미가 색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