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심재명이 털어놓는 뜻밖의 기록
“나이 오십에 문득 지금 내 나이의 엄마를 생각한다”

 

<접속>에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개론>에 이르기까지 제작하는 영화마다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그가 첫 책 『엄마 에필로그』를 펴냈다.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한 그는 어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 사람의 딸이자 엄마, 아내로서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엄마’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를 글로 풀기까지 오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힘겨운 반추와 반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기일은 저자의 생일 다음 날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제사상과 그의 생일상은 같은 날 차려진다. 여전히 ‘엄마’라는 이름은 그의 삶 한가운데 있다.
영화 한 작품의 탄생을 결정하면서도 전면에 나서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는 제작자의 모습처럼, 저자 심재명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소신 있게 영화를 만들어온 그에게 여러 번 망설임을 준 글쓰기, 이제야 무언가 쓸 수 있다는 결심이 섰을 때 그의 나이는 오십이었고 그 나이의 엄마가 불현듯 찾아왔다. 저자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를 지나던 그 시기, 갱년기 여성과 사춘기 여성이 한 집안에서 날을 세워가며 갈등하던 그때, 그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하며 딸은 이제 세상에 없는 엄마를 불러낸다. 이 세상 수많은 엄마 가운데 하나지만 나만의 엄마이기에 유일한 사람, 애愛와 증憎이 함께하던 시기를 거쳐 오로지 애정만 남았을 때 그 엄마는 죽음을 앞두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엄마 에필로그』는 엄마 자신의 에필로그이자 그 딸이 쓰는 에필로그다. 딸은 상실감을 이제 겨우 글로 채운다. 그리고 그 상실감을 겪었을, 겪고 있을, 겪을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고자 한다.
     

 

이제 내 나이 오십, 엄마는 꼭 여든 살이 되셨다. 서로를 긁지 않고 노려보지 않으며, 여유 있게 주방 식탁에 앉아 맛난 음식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엄마의 주름 많은 얼굴도 손으로 만져 확인하고, 엄마의 너그러워진 마음씨와 나이 들어 느려진 말투로 우리 지난날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엄마는, 내 옆에 없다.
- 20쪽, 「나의 오십, 엄마의 오십」에서

 

이 책의 저자 인세는 모두 루게릭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이도록 기부된다.

 

 

아플수록 성숙해지는 모진 시간
“내 마음속에서는 이 영화를 엄마에게 바쳤다”

 

운동신경세포가 퇴화하면서 온몸의 근육이 기능을 잃은 채 굳어가는 루게릭병은 인구 십만 명 당 한두 사람이 걸린다는 희귀한 병이며, 정신은 또렷한 채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한 병이다. 저자는 엄마의 발병에서 투병,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 시간이 가족들에게는 서로를 잇는 끈을 더욱 단단히 묶는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의 몸이 50킬로그램에서 40, 35킬로그램으로 줄어들며 가벼워지는 사이, 가족들은 엄마의 흔적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었다.   

 

삼십 년 전의 잔소리라도 좋으니 엄마가 따발총처럼 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셀 수 없이 했다. 그 어눌한 문장은 이제 한 음절, 한 음절을 간신히 내뱉어야 하는 정도가 되었다. 엄마가 내뱉는 ‘도’ ‘더’ ‘음’ 같은 단어를 소중하게 손으로 받아 모시듯 챙겨야 했다.
- 88쪽, 「내 인생 가장 후회되는 일」에서

 

엄마는 아기처럼 앉아 수줍고 애잔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몸을 맡긴다. (…) 아기를 막 낳아 두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리던 때가 생각났다. 아기는 날이 갈수록 살이 붙고 뽀얘지고 무럭무럭 자란다. 엄마도 두 시간에 한 번씩 먹지만, 갈수록 야위어간다.
- 76쪽 「가족의 끈」, 81쪽 「엄마의 몸」에서

 

이 시기에 심재명 대표가 선택한 명필름의 영화도 어머니의 투병과 무관하지 않다. “육체와 육체를 맹렬하게 부딪치며 지독하게 안간힘을 쓰는”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모습에 감동하여 그 투혼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어머니가 병을 앓으며 온몸이 마비되기 시작하던 때 구상되었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수십 명의 이름 사이에 심재명 대표의 어머니 홍기열 여사의 이름이 자리했다. 저자가 어머니께 마음속으로 바친 영화다. <마당을 나온 암탉> 역시 어머니의 투병 생활이 한창이던 때 기획된 영화로, 저자는 개봉 후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러오는 젊은 엄마들 모습에 자신의 어머니 모습을 겹쳐 보곤 했다.
‘처음’이라는 달뜬 기분에, 응원 차 말없이 찾아온 엄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아쉬웠던 영화 <코르셋>의 개봉날 풍경, PC 통신으로 사람을 만나는 ‘젊은 세태’를 이해하지 못해도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인정한 부모님의 <접속> 관람 등, 저자는 뒤늦게 영화 일과 얽힌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지금 모습에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엄마의 피와 뼈와 살로 내가 어른이 되고,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엄마의 눈빛과 머리카락과 손가락과 말과 눈물과 웃음과 한숨이,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내는 모든 모습이 내게 영감과 각성을 선물했다고,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수없이 생각한다.
- 130쪽, 「엄마에게 바치는 영화」에서

 

 

엄마의 에필로그, 나의 프롤로그
“서른세 편의 영화는 서른세 번의 용기”

 

지금 자신의 나이와 같은 어머니의 그 시절을 겹쳐 보며 저자는 자연스레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주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둘째이자 맏딸로 자라 내성적이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사소한 용기’를 냈다. 엄마에게 꾸중 들은 날에는 오기로 혼자 살겠다며 무단가출을 했다가 차비가 없어 풀 죽은 채 돌아오기도 했고 육성회비를 제때 못 내 창피해하다 친척 집을 찾아가 호기롭게 돈을 빌려오기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좋아하는 친구를 기다리던 중학생이 남몰래 지리 선생님을 바라보던 고등학생으로, 미팅 상대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수줍게 걸어가던 대학생으로 자라면서 인간관계도 좀 더 유연해지고 성숙해졌다. 모두 내성적인 망설임과 그 끝에 발현한 사소한 용기가 빚어낸 기다림의 결과였다.

 

‘버스, 정류장’…… 잠시 그 제목을 째려보았다. 그러고 한참 쳐다보았다. 쿨한 감정으로 인생을 사는 인간들은 아마도 아무렇지 않을 그 제목이 나에게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많이, 나는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거나, 버스를 향해 달려가거나, 누가 볼세라 얼굴을 붉히며 정류장을 서성였던가.
- 141쪽, 「버스 정류장에 선 스토커」에서

 

남편은 “재명 씨는 대체로 수세적인 성격인 것 같아”라고 말하곤 했다. (…)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소망하는 것이 기어나와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리고 그것이 싹을 틔우고 꽃으로 피어나기까지, 나는 그 시작쯤에서 자주 머뭇거리고 우물쭈물거리는 편에 속한다. (…) 그러다 불쑥불쑥 용기를 내는 때가 있다.
- 144쪽, 「사소한 용기」에서

 

심재명 대표가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우연히 합동영화사 구인 광고를 발견하고는 오래 망설이고 한 번 용기를 낸 끝에 이루어졌다. 저자는 명필름이 만들어온 서른세 편의 영화를 두고도 “서른세 번의 용기”라고 일컫는다. 그 용기는 자랑스러운 씩씩함인 적도 있었지만 만용인 적도 있었다며 엄격함을 내보인다.
『엄마 에필로그』는 엄마의 삶에서 시작해 딸의 삶으로 끝난다. 영화인 심재명의 이야기는 책의 말미에 자리하고, 저자는 엄마의 이야기를 마친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듯이 수줍어한다. 어쩌면 엄마의 ‘에필로그’가 딸의 ‘프롤로그’인지 모른다. 따라서 「책을 내면서」에 실린 다음의 말은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별로 없다. 무엇을 정말 원하는지, 무엇을 간절히 꿈꾸었는지, 언제 가장 기뻤고 슬펐는지, 엄마는 어떤 생을 살고 싶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 엄마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고 싶었다. 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엄마는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쓰는 것으로 그나마 대신하고 싶었다.
- 8쪽~9쪽, 「책을 내면서」에서
 

 

 

추천의 글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째 좀 알겠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친밀감과 믿음 쪽으로. 내게 심재명은 그런 사람이다. 그이가 산문집을 낸다고 해서 나는 당연히 영화에 관련된 글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 이야기다. 영화계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일인자일 그이가 제작한 영화 이야기는 끼어들듯 조금 섞여 있을 뿐. 나는 루게릭병을 앓다가 작아지고 작아져 30킬로그램의 가볍디가벼운 체중으로 저세상으로 옮겨가신 그이의 엄마 이야기를 빠져들듯 읽다가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내 엄마의 말, 내 엄마의 상처, 내 엄마가 누린 소소한 행복, 내 엄마의 체온, 내 엄마의 손길이 거기 있었기에. 이 글을 쓴 그이와 내가 다른 게 있다면 그이의 엄마는 여기에 부재하고 내 엄마는 아직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알고 있다. ‘언젠가’라는 단서가 붙어 있을 뿐 그이의 슬픔과 상실감이 곧 내게 당도하리라는 것을. 새삼 이 사실을 일깨워준 글들을 처음으로 돌아가 한 번 더 읽는다.
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