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작가, 프린스턴대 45년 글쓰기 교수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의 국내 첫 출간 책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미국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의 산문집이 국내 첫 출간됐다. 맥피는 1965년부터 <뉴요커> 전속 기자로 활동하며 서른 권이 넘는 저작을 발표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을 45년간 진행해 왔는데,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들과 작가들이 이 수업을 거쳐 갔다. 1960년대 트루먼 커포티, 톰 울프 등이 주도한 ‘뉴저널리즘(New Journalism)’의 영향을 받은 그는 지질학, 자연, 역사, 스포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방대한 관심사에 대해 글을 써왔다. 면밀한 구성을 통해 논픽션의 ‘사실’을 넘어 ‘감정’을 이끌어내는 그에게 비평가들은 ‘독창적인 논픽션(Creative Nonfiction)’ 장르를 개척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최신작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더 패치』(이하 『더 패치』)에서 맥피는 그간 썼던 글 중 “25만 단어를 샅샅이 훑어 75%를 잘라”내고 개고해서 엮었다. <타임> <뉴요커> 등의 기고 글과 개인적으로 써왔던 글을 모은 이 책은 작가로서 맥피의 일생을 보여주는 “메타적 자서전”에 가깝다. 맥피는 아버지의 임종에 대해 쓴 「더 패치」로 책의 첫 장을 열면서, 글쓰기의 내밀한 기원이자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특별한 공간(패치)으로 독자를 단숨에 이끈다. 1부에서 골프, 미식축구, 라크로스, 곰 등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삽화, 추억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글을 엮는다면, 2부에서는 1950년대부터 잡지 기사로 썼던 존 바에즈, 토머스 울프 등에 대한 프로필, 허쉬초콜릿 공장 방문기, 미국 정계의 골프클럽 ‘버닝 트리’ 등 미국의 정치, 문화사에 관한 소재들로 흥미를 더한다.


뉴욕대에서 ‘창의적 르포르타주’를 강의하는 작가 겸 저널리스트 로버트 보인턴(Robert S. Boynton)은 존 맥피를 ‘뉴뉴저널리즘(The New New Journalim)’의 대부라 평했다. 뉴뉴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고전적 가치를 중심에 두면서 뉴저널리즘의 미학적 야심을 계승한 이들의 글쓰기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특별한 대상의 도드라진 사연이나 자극적인 일화보다는 덜 특별한 이들의 일상에 주목했고, 현란한 수사나 문학적 비유보다 팩트들—그것이 진술이든, 묘사든, 인용이든—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내용과 함께 감정을, 감동을 전하고자 했다. 뉴저널리스트들이 논픽션으로 픽션의 성채를 넘봤다면 그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알량한’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맥피가 그 선봉이었다.

- 최윤필 『가만한 당신』 저자 (「해제」 중에서)



90세 현역 논픽션 작가가 관찰한 사람과 사물들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듯’ 

각각의 단편으로 큰 진실을 드러내다



원서 제목이기도 한 ‘패치(patch)’의 사전적 의미는 ‘주위와 구별된 작은 공간’, ‘장식용으로 덧대는 데 쓰는 조각’인데 이 뜻은 책의 구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 패치』는 1부 「스포츠의 현장」과 2부 「앨범 퀼트」로 나뉘어 있으며 1부는 비교적 작가의 근년 이야기를 다룬 중단편을, 2부는 56편의 단편을 개고해서 엮었다.

1부의 「더 패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는 맥피가 어렸을 적 아버지와 낚시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더 패치’는 작가가 즐겨 찾던 낚시터이자 뉴햄프셔 위니퍼소키호수의 수련 서식지에 붙인 이름으로, 이곳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낚싯대로 강꼬치고기를 낚곤 했다. 맥피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각별하다. 그는 저작 『4번째 초고: 글쓰기 과정(Draft No. 4: On the Writing Process)』에서 자신이 쓴 글들의 주제를 조사한 결과 90퍼센트 이상이 대학교 이전의 관심사와 연결됐다고 밝힌 바 있는데, 삶을 이루는 많은 추억이 아버지와 보낸 시간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년기부터 프린스턴대 팀 닥터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미식축구 등의 스포츠를 접했고 역시 아버지가 주치의였던 키웨이딘 캠프에서 성장기를 보냈는데, 이때의 경험은 그가 훗날 낚시, 카누, 자연 등을 글의 소재로 삼는 바탕이 됐다.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을 통해 글을 썼기에 맥피는 책의 시작을 아버지에게, 글쓰기의 ‘패치’에 헌사한다.  

1부의 또 다른 글인 「파이베타 미식축구」 「링크스랜드와 바틀」 「파이어니어」에선 차례로 미식축구, 골프, 라크로스를 다룬다.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동기들과 젊을 적 미식축구 팀으로 경기했던 추억,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삼촌이 심판으로 뛰었던 때를 돌아본다. 열 살 무렵 비바람 치는 경기장에서 선수로 뛸 때, 난방기가 있는 기자석을 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글쟁이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링크스랜드와 바틀」은 2010년 브리티시 오픈을 중계하듯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경기가 열린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특징과 역사, 골프 중계 방식의 변천사, 우승한 골퍼 루이스 우스트히즌을 비롯한 선수들의 삽화 등을 유려하게 엮어낸다. 올드 코스 주변 마을의 골프 클럽이 어떻게 계급별로 나뉘어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골프를 통해 지역 사회를 들여다보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오렌지 트래퍼」에서 그는 골프 코스 주변에 떨어진 골프공을 강박적으로 ‘오렌지 트래퍼’라는 기구로 주우러 다니고, 「직접적인 시선 교환」에서는 곰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갈망을 고백하는 엉뚱함도 보여준다. 

2부 「앨범 퀼트」는 56개의 글 조각(패치)을 ‘퀼트’를 짜듯 작가가 직접 배치했다. <타임> 기자 시절부터 써왔던 글들은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 넘나든다. 마치 삶의 단편들이 모여 존 맥피의 취향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듯한 2부는 먼저 유명 인사들의 프로필이 눈에 띈다.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캐리 그랜트, 소피아 로렌, 뮤지컬 작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환경 운동가 데이비드 브로워, 존 바에즈의 이야기까지 전후 문화계 주요 인물들의 사적 이야기로 개개인의 매력과 이들이 놓인 사회상을 드러낸다. 맥피의 주 관심사인 지질학과 자연에 대한 글도 있다. 로스앤젤레스를 만든 대륙판의 움직임에 대해 쓰기도 하고 새 관찰(birding)에 푹 빠진 편집자의 이야기를 통해 ‘버딩’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허쉬초콜릿 공장, 금을 보관하는 맨해튼 연방준비은행 방문기는 맥피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 그곳을 차근차근 둘러보는 듯하다. 이 외에 <타임> 커버 이미지에 얽힌 비화, 명편집자 로버트 빙엄과의 일화도 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소소한 일상을 다룬 글은 인간 맥피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


맥피는 폭발하는 듯한 지식으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의 정신은 순수한 호기심 그 자체다. 그의 호기심은 모든 세상의 끝자락들로, 특히 대다수가 간과하는 장소들로 흘러가기를 열망한다. 맥피의 글은 우울하거나, 섬뜩 하거나, 슬프거나, 패배주의적이지 않다. 그것은 삶으로 가득 차있다. 맥피에게 탐구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삶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방법이다. 그의 거대한 우주론에서 지구의 모든 사실은 서로 연결된다. 모든 지역, 생명체, 시대 그리고 그것들의 존재와 부재 모두 말이다. 물고기, 트럭, 원자, 곰, 위스키, 풀, 바위, 라크로스, 선사시대의 이상한 굴, 손자들과 판게아 대륙. 이 모든 것이 보낸 시간은 다른 모든 것이 보낸 시간과 연결된다.

- 샘 앤더슨 <뉴욕 타임스>


구성 하나만으로도 참신한 작품. 수십 년간 세상을 상세하게 관찰하고 그 관찰 내용을 정확하게 묘사한, 글을 쓴 시기나 맥락이 알쏭달쏭한 글들이 당신을 향해 밀려오는 것을 경험하는 건 매혹적인 일이다. 인생의 추억을 한데 이어붙이는 무척이나 진솔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보여주는 이 책의 구성은 깔끔한 발단과 전개, 결말이 글쓰기 전략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한다.

- 윌리 블랙모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써낸 

독창적인 논픽션. 사실을 배치하는 구성의 힘


“허구적 사실을 빚어내는 마술사라기보다는 현실의 정보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그릇에 가까운 작가” 존 맥피는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글 구성을 짜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업한 모든 프로젝트에서 나는 구조에 집착했다”는 그는 집필을 시작하기 전 정보를 어떻게 배치할지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더 패치』에서는 이런 그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다. 표제작 「더 패치」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병상과, 강꼬치고기 낚시에 성공한 과거의 이야기를 부단히 오가는 구성으로 감정에 대한 직접적 묘사 없이도 아버지를 향한 저자의 애틋함을 전달한다. 과거의 그는 강꼬치고기를 낚고, 현재의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끝을 맺는 글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비유를 함축한다. 「링크스랜드와 바틀」 「파이어니어」는 골프, 라크로스 경기 실황을 중계하듯 전하면서 중간중간 경기를 둘러싼 삽화들을 적절히 배치해 흥미를 끌어올리고, 경기 승리 장면을 묘사한 후반부는 쾌감과 승리의 의의를 동시에 전한다. 마치 잘 조율된 오케스트라 같은 구성을 보여주는 근년의 글뿐 아니라, 젊은 시절의 맥피가 잡지에 기고했던 유명인들의 프로필도 뛰어난 구성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유명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흥미로운 일화를 글 초입에 배치하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끄는데, 이런 구성은 마지막 문장에 가서야 본명이 밝혀지는 배우 피터 오툴에 대한 글에서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유머도 빼놓을 수 없는 그만의 인장이다. 특히 인물들의 유머러스한 부분을 포착해 전하는 방식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연방준비은행의 지하 금 보관소 직원들은 자신들이 “조직의 사다리를 오르는 대신 내려”왔고 “사다리의 다음 계단은 땅에 묻히는 거죠.”라고 너스레를 떤다. 책 제목처럼 맥피는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으면서 글을 썼고 유머를 구사했다. 그리고 그의 유머는 삶의 이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더 패치』에서 독자들은 존 맥피 논픽션의 정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전업 작가란, 정의하자면, 극기라는 옷을 걸치고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정신과 영혼에 얼마나 가혹한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 모른다고 유창하게 한탄하고, 무엇이 되었든 집안일이라도 생길라치면 ‘작업 기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고, 해쓱한 시인처럼 구슬픈 얼굴로, 두려움 가득한 작업실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한가한 인간들에게 자신은 이만 가보겠다고 말하고, 글쓰기의 성소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빗장을 채우고, 그 고독한 희생 속에서, 뉴욕 메츠의 야구 경기에 빠져 드는 사람이다.

-2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