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문화관광부 교양도서 선정


옛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선화禪畵


“있기는 있는데 속 시원히 잡히지 않는 목마름,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 과연 이게 뭘까?”


『선화』의 저자 김홍근은 이 간절한 물음을 품고, 길 위에서 길을 찾는 끈질긴 ‘구도자'다. 이러한 물음은 그를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동서양의 학문과 종교를 두루 아우르게 하고, 국내외 여행길로 이끌고 있다.


김홍근은 옥타비오 파스와 보르헤스를 연구한 문학박사이자 유불선과 기독교를 회통한 다석 유영모의 사상연구모임인 ‘다석사상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종교간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또한 15년 동안 성천문화재단의 동서인문강좌를 운영하는 가운데 문화유적답사 또한 부지런히 해오고 있다. 2004년부터는 참선 실참에 몰두한 끝에 『참선일기』를 펴냈고, 현재 조계종 포교사 대학원에서 간화선 강의도 하고 있다.


이번에 펴낸 『선화』는 구도의 여러 길 가운데서, 특히 문화유적답사 여행에서 길어낸 ‘소박한 마음의 행로'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는 박물관 연구원이 소개하는 역사적 사실이나 미술학자의 학술적 설명은 들어 있지 않다. 대신 그곳에 스며 있는 ‘마음'을 읽으려는 저자의 지극한 시선에 따라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동참하게 된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무슨 용도인지, 왜 여기다 배치했는지, 전체와는 어떻게 조화가 되는지, 만든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여기 사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18p) 저자는 이렇게 들여다보면 만든 사람의 마음이 비치면서 시공을 넘어 서로 ‘통하는' 느낌이 온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선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 보다는 ‘느낀 만큼 보인다'는 명제에 가까운 책이다. 『선화』는 세상이라는 텍스트에서 사물을 읽어내는 안목을 높이고 사물과의 대화, 더 나아가 풍경과의 짜릿한 교감에 이르기까지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문화유적답사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무심코 마주치는 풍경에서 ‘선화 발견하기'


일반적으로 선화禪畵란 불교에서 ‘스님들이 수행을 목적으로 그리는 그림' 또는 ‘마음 속 수행의 경지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뜻한다. 하지만 선화의 개념을 일상으로 가깝게 끌어오면, 그 외연은 단순하고도 편안하게 넓어진다.


『선화』의 저자 김홍근은 대학시절 선화 강습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림을 가르친 선생님은 ‘어줍지 않은 테크닉을 버리고 무심으로 돌아가서,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심상을 표현해보는 것'으로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선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때부터 저자에게는 하나의 버릇이 생겼다. 일상 중 무심코 마주치는 ‘무심한 그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낡은 책 겉장의 손때 묻은 얼룩의 모습, 대리석 벽면이나 바닥에 드러나는 돌의 결, 비 오는 날 창밖으로 보이는 우산의 행렬, 푸른 하늘에 점점이 떠 있는 흰 구름들, 단청 하지 않은 사원의 기둥에 드러나는 나뭇결, 오래된 집 벽에 얼룩진 세월의 때 자국, 연못가에 점점이 떨어진 꽃잎, 오래된 석탑의 푸른 이끼와 그 위에 떨어진 마른 나뭇잎…….” (33~34p)


마음을 열면 이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는 “자연 속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이미지들이 고이 숨어 있다. 그것을 즐길 수만 있다면, 발길 닿는 모든 곳이 미술관으로 변한다”며 ‘선화 발견하기'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자연 미학의 극치가 담겨 있는 우리 자연, 우리 유적!


김홍근은 국보나 문화재로 지정된 유명 사적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곳, 작지만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저자는 단아하고 질박한 우리 한옥에 미니멀리즘적 정신과 아르 누보 운동, 칸딘스키의 컴퍼지션을 대입하기도 하지만, 굳이 예술 사조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우리 자연과 건축물에는 ‘자연 미학'의 극치가 담겨 있다며 감탄을 거듭한다.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의 정원인 ‘송석정'은 특이하게도 큰 소나무가 지붕 위를 뚫고 나와 서 있다. 소나무를 살리면서도 정자를 짓기 위한 묘책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서산 개심사 범종각은 무거운 지붕과 종을 받치는 기둥으로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다. 굵은 직선을 마다하고 가는 곡선을 살린 지혜를 실감하기 위해 서양의 이름난 건축가들이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그림' 같은 일본식 정원과 ‘연극 무대' 같은 중국식 정원과 달리, 살아 있는 생활 공간이며 자연의 연장인 한국식 정원 또한 자연미학의 연장선상에서 살펴본다. 우리 정원은 마당은 텅 비워두고, 누대의 기둥과 기둥 사이엔 벽을 세우지 않는 대신 차경借景(경치를 빌려오기)이나 인경引景(경치를 끌어오기)과 같은 기법으로 공간을 풍성하게 채운다. 사람이 아무리 인공적으로 꾸며도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따라갈 수 없다는 자각이 ‘꽃피는 시냇가에 덜렁 정자 한 칸 세워둔' 한국식 정원의 원형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무기교의 장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통을 극대화하는 장치면서 하나의 ‘살아 있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연경당 툇마루에서 활짝 열어젖힌 방문은 하나의 액자가 되고 바깥의 단풍 든 나무와 야트막한 담장은 한 폭의 그림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백담사 만해마을의 새로 지은 법당에는 단아한 화강암 불상만 있고, 탱화가 없다. 하지만 격자무늬로 창살만 꾸며놓은 유리 문짝에 뒷산의 숲이 비치면 그대로 자연 탱화가 펼쳐진다.


“그 어떤 명화가 ‘이 살아 있는 그림'을 따라올 수 있을지?”라는 저자의 감탄을 따라 옛 사람들의 미학적 심성을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우리의 자연관과 미적 감각도 훌쩍 키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옛을 잘 갈무리해 내일과도 통해야 사는 것


김홍근의 말처럼 서로 마음 맞는 일이 쉽지 않은 이 인간사 세상사에서 서로 마음 통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겠다. 그러하니 누군가와, 무언가와 마음이 통할 때 우리는 유한한 인생을 넘어서는 어떤 기쁨으로 가슴이 젖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통해야 산다. 그렇지 않겠는가. 너와 통하고 그와 통하고, 옛과 통하고 그 옛을 잘 갈무리해 내일과도 통해야 사는 것. 이 『선화』에는 그런 통함이 있다.


유정 무정의 자연과 옛사람들이 이룬 지고의 인공 조형물 등을 만나 그들의 시간과 그것들이 전해주고 싶어했던 이야기와 뜻을 아름답게 되살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옛 흔적과 발자국만을 현재에 그저 미화해 살려내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까지도 새롭게 살려내고자 하는 어떤 빈 마음의 간절함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점은 각별하다.


돌길, 연못, 문살, 문고리, 쇠종, 깜장 고무신, 담장의 문양, 후원의 장독 이런 것들과 당신이 통했다면 당신이라는 나는 “그 순간 누구‘나'이고 어디‘나'이고 언제‘나'가 된 것이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는 말처럼 바로 꽃자리가 된 것이다. ‘光明'이 된 것이다.
이렇듯 『선화』에서는 마음을 닫지 말고 열기만 하면 “나도 모르는 내가 자꾸 살며시 깨어나” 기쁨의 샘을 짓도록 하는 마음 여행길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순정한 우리 마음의 본바탕과 쉴 수 있는 무심의 마음을 환하게 일으킬 수 있다. 『선화』는 무심의 마음을 환하게 일으키게 했던 흐르는 만상萬象과의 순간순간 빛나는 대화록이다.
─이진명(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