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컬트 거장 데이비드 린치 

아이디어로 가득한 그의 50여 년 영화 인생

 

BBC에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위’로 선정한 <멀홀랜드 드라이브>. 악몽 속 미로를 걷는 듯 기이한 매력을 품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컬트 거장이라 불리는 데이비드 린치다. 그의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1977)는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전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 린치는 <엘리펀트 맨> <블루 벨벳> <트윈 픽스> <광란의 사랑> <스트레이트 스토리> <인랜드 엠파이어> 등을 연출하며 명실상부한 거장으로 우뚝 올라섰다.

마음산책 영화감독 인터뷰 시리즈 신간 『데이비드 린치: 컬트 영화의 기이한 아름다움』은 린치가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1977년부터 최근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했던 총 24편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린치의 회고록 『꿈의 방』의 공저자인 크리스틴 매캐나를 비롯해 <무비 메이커> <필름 코멘트> <포지티브> 등 영화 전문 매체의 기자들이 진행하는 심도 있는 인터뷰는 린치의 작품 세계를 연대기 순으로 조명한다. 컬트 거장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영화를 향한 린치의 진심 어린 열정과 철학을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 각각의 작품을 만들 때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영화 작업 방식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전하고 있어서 데이비드 린치의 팬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또한 유년기에 예술적 영감을 주었던 것들, 미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영화로 진로를 바꾸게 된 청년기, <이레이저 헤드>를 연출할 때 내면의 위기를 겪고 ‘초월 명상’에 빠진 계기 등 이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린치의 삶 이야기가 담겼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 우리는 사회 이슈를 다룬 영화를 집필할 거야.” 그러고는 그걸 목표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목표를 뒷받침하는 영화를 만들어내죠. 나는 전혀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이디어들을 얻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이디어가 그냥 뚝 떨어졌습니다. 내가 굉장히 몸이 달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술술 써냈어요. 아이디어들은 그런 방식으로 생겨났습니다. 조각조각 난 상태로 생겨난 겁니다. 그런 후에 나는 조각들 전체를 하나로 연결해줄 실을 구했고 이런저런 작업을 했죠. 실을 구하고 나니까 다른 것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머릿속으로 그것들을 정리했습니다. 나는 부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걸 많이 확보했습니다. 유머도 있었고요.

-본문 47쪽

 

 

“바닥에 나뒹구는 건 멋진 경험입니다”

<이레이저 헤드>부터 <인랜드 엠파이어>까지 

영화 연출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지금은 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인 린치도 한때는 데뷔작을 완성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가 있었다. 영화 개봉 전후에 한 인터뷰들은 당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데, <이레이저 헤드>를 연출할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부분에서는 영화를 향한 신인 감독 린치의 고민과 패기를 엿볼 수 있다. 그는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제작비가 거듭 바닥나는 상황에서도 <이레이저 헤드>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세트장에 본인이 실제로 거주하기도 했는데 해당 장소의 분위기를 체화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고 린치는 말한다. 이후 그는 <로스트 하이웨이>(1997)를 연출할 때도 자신의 실제 집에서 영화 일부를 촬영하기도 한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 후보에 오른 <엘리펀트 맨>(1980) 제작기도 흥미롭다. 영화의 배경인 빅토리아시대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흑백으로 촬영하기로 결정하고, 촬영감독과 긴밀히 협의하는 과정을 드러낸 부분에서는 영화 촬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다. 앞선 두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후, 비교적 큰 예산으로 연출한 SF 영화 <사구>(1984)가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했을 때는 “최종 편집권을 갖지 못한 영화를 만드느니 영화를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는 교훈을 얻었음을 고백한다.

대표작 <블루 벨벳>(1986) 관련 인터뷰에서는 영화에 대한 그의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세상의 “표면 아래에서 진행되는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가 늘 있고, 영화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그 표면 아래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어둠”에 끌리기에 그것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감독이라면 자기 작품에 대해 “솔직하게 느껴야” 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충실하면서 자기 자신을 신뢰해야 한다’고 조언을 건넨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제작 비화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원래 TV 드라마 파일럿으로 제작되었지만 시리즈가 무산되면서 공개 자체가 어려워질 위기에 처한다. 린치는 재촬영과 재편집을 한 끝에 이 파일럿을 영화로 완성해내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선셋 대로> 이후로 나온 할리우드 배경 영화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렇게 감독으로서 산전수전을 겪은 린치는 영화 인생을 돌아보며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달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구>와 <트윈 픽스> 영화판의 실패도, 또 다른 성공도 “숙명의 쇄도”라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거장의 남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린치가 재단을 설립해서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초월 명상’에 대한 내용도 책에 포함되어 있다. <이레이저 헤드>를 만들 무렵, 내면적인 위기를 겪은 그는 ‘초월 명상’을 통해 삶의 균형을 회복했고, 그 이후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며 그것에 대해 자세히 논한다.


린치는 자신의 직업적 인생과 개인적 인생에 닥친 숙명을 모두 포용한다. “사람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근사한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실패를 해도, 길거리에서 발길질에 쓰러지고 피를 흘리고 이가 빠질 때까지 몇 번 더 걷어차인다 해도 길을 가려고 일어나야만 합니다. 다시 거듭나는 거예요. 세상은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당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거든요. 바닥에 나뒹구는 건 멋진 경험입니다. 너무 멋진 일이죠!” 

-본문 378쪽

 

 

미술 작업부터 작곡까지, 

종합 예술가 린치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 속으로

 

청년 시절 린치의 꿈은 영화감독이 아니라 미술가가 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술학교 세 곳을 전전하고, 표현주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에게 배우러 무작정 유럽에 가는 등 미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던 젊은 린치.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도 그림을 그리고 미술 전시회를 열면서 여전히 미술을 좋아한다고 밝힌다. 린치는 건축과 가구 디자인에도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여준다. 라이트 가문, 피에르 샤로 등을 존경하는 건축가,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직접 영화의 세트 제작에 관여하기도 한다.

사운드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화면이 사운드를 지시하고, 사운드는 무드를 구축해야 한다”라며 영화 사운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는 <이레이저 헤드>에서 사운드감독 엘런 스플렛과 작업하며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한다. 또한 음악감독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같이 작곡을 하는 등 음악적 재능도 드러낸다. 이 외에도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해서 소설 『심판』을 영화화하고 싶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실제로 그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데이비드 린치』에서는 영화 연출을 넘어서 다양한 예술 분야에 능통한 종합 예술가 린치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어: 당신은 영화감독이자 연기자, 전설적인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크리에이터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열정은 영화와 텔레비전에만 머무르지 않죠.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함께 작곡을 했고 또 화가로서…… 최근 파리의 전시회에 당신의 그림들이 걸렸죠.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당신이 가구를 디자인해왔다는 것을 압니다. 또 어떤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린치: 걱정 말아요. 만능 탤런트처럼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요. 불가피하게 이런저런 일에 관여하게 된 것뿐이에요.

나는 화가로 경력을 시작했어요. 많은 화가들처럼, 새롭게 도전할 것을 찾고 있었어요. 미술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캔버스 스트레처를 만들어서 캔버스를 펼치려면 많은 도구를 다뤄야 하죠.

늘 그런 식으로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지다 보니 이것저것 만들고 있더군요.

그건 특별한 세계관이에요.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거죠. 내 경우, 아버지가 늘 집에 작업실을 두고 있어서 나는 도구 사용법을 익히고 작업실에서 물건을 만들며 많은 시간을 보낼 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그 모든 건 어린 나이에 시작된 거죠.

-본문 3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