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자꾸 흩어지기만 하는 자기 삶의 조각들을 거두어 

투명한 병에 담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은령 선생님의 책을 권한다.”

_김영민(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공부란 무엇인가』 저자)


“그의 글은 가랑비처럼 내려앉아 서서히 스며들고 끝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적신다.”

_이진순(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저자)



삶의 진보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단단한 사유, 낮은 목소리

칼럼니스트 정은령의 첫 책


성찰은 드물고 귀하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빠르게 내세우는 강한 주장이 빈번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성찰을 통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생각들은 그 더딘 걸음으로 인해, 크고 단호한 목소리에 쉽게 가려지곤 한다. 그러나 깊은 성찰을 통과한 사유는 특유의 단단함과 미더움이 있다. 이 책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이자 칼럼니스트 정은령의 첫 책으로, 끊임없이 자기반성에 천착한 저자가 써 내려간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제목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는 옛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첫인사로 사용한 말로, 정은령 저자가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한여름 출퇴근길의 지하철 안, 붐비는 사람들 틈에 있다보면 타인은 그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무더위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타인을 ‘열 덩어리’가 아닌 존엄한 개인으로 그 얼굴을 상상하려 한다. 이러한 사유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가늠하는 섬세한 윤리의식에서 비롯되며,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는 생각의 궤적은 책 전반을 아우른다.


대단한 일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타인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려 하지 말아야 하고, 울음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지를 찾아봐야 하고,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도 그 규범을 저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을 거야. _184쪽



“내게 글쓰기는 오롯한 목표였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외면하지 못해서이다.”


저자는 19년간 신문기자로서 글을 썼고, 연구자가 된 지금은 기자협회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일종의 ‘공적인’ 글을 주로 써온 셈이다. 그의 글은 일간지 칼럼 연재 당시 명칼럼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1~3부는 대부분 ‘사적인’ 기록들로, 미국 유학 시절, 모국어를 그리워하며 꾹꾹 눌러 적은 글들을 묶었다. 부모님과 남동생, 외삼촌의 죽음, 자녀의 성장 등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부터 유학 생활 동안 다양한 책을 읽고 공부하던 나날, 괴짜 지도교수를 만난 일 등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또한 언론인으로서 사회에 대한 관심도 진지하게 드러난다. 화력발전소에서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를 만난 날, 저자는 자식을 앞세운 그의 슬픔을 감히 가늠하기 어려워한다. 다만 김미숙 씨가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하며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수정처럼 맑고 단단한 슬픔은 어둠에 모든 것이 묻힌 세상을 비춘다. 아들이 스러져간 어둠 속의 터널을 김미숙 씨는 그렇게 밝히고 있다”라고 그를 쓰고 기억한다.


자식을 앞세운 마음을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다른 곳도 아닌 일터에서 가족을 잃은 억울함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김미숙 씨는 그 지옥에서 “용균아 내가 너다”라며 살아가고 있다. 아들의 사고 현장을 찾았을 때 동료들을 향해 그가 절박하게 외친 말은 “빨리 나가. 여기서 나가야 한다. 우리 아들 하나면 됐다”라는 것이었다.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되었을 때 그가 한 다짐은 유가족으로서 유가족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_77~78쪽


이렇듯 저자가 줄곧 관심을 갖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나의 안위에 관심이 넘쳐나는 시대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로 공명될 수 있는 한 대목이라도 있기를 바란다고. 그래서 우리가 만나지 않더라도 어떤 풍경을 함께 보는 잠시의 순간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그것이 당신에게 깊이 내쉬고 들이쉬는 한 숨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한다고 말하고 싶다. _10쪽



“타인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려 하지 말고, 울음을 멈출 방법을 찾아보는 것”

매일 쌓아 올리는 공감에의 노력


저자는 쉽사리 자신감을 보이거나 확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저자가 머뭇거림 속에서도 끝내 글을 쓰는 이유는, 쓰는 동안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의 4부에 묶인 그의 칼럼들은, 사회로 향하는 시선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사회적 사안에 대해 곧바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일상적인 것에서 생각의 씨앗을 발굴해내 이를 확장시킨다. 가령 축구선수 메건 러피노와 육상선수 양예빈을 보며 운동하는 여성의 몸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불법촬영 등 폭력의 온상이 된 여성의 몸에 대한 서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또한 제자인 이십대 J씨에게 답장을 보내는 글에서는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현재 소위 ‘기득권’이 된 세대인 자신을 성찰한다. 저자는 “지금도 저의 친구들 대다수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불리는 일에 강하게 반발합니다”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득권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성찰에서 출발한 생각은,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서로가 선 자리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인식에 이른다. 자신이 선 자리에 대한 솔직한 인정은 청년을 비롯해 사회의 약자들과의 대화를 열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내 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의 영역에 있으며 듣기 싫은 이야기는 차단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세상에서 흘러 다니는 이야기들은 뻔하고 겹이 얇다. 그렇게 얄팍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한다. _226쪽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외면하지 못해서” 글을 쓴다고 이야기했다. 무언가를 목격한 이후에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이는 글이 가진 힘을 의식하고, 그것이 혹여 타인을 해하는 칼날이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과 닿아 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쓰인 그의 문장들은 못내 미덥다. 이 책을 읽으면 어려운 시대에 나와 타인의 안녕을 비는 일의 귀함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