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권리를 찾아줄 착한 법』의 제목과 표지가 바뀌었습니다.)


현대인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 ‘착한 법’
대중의 언어로 옮긴 유쾌한 민법 지침서


2012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시행 중인 법령은 4,200여 개, 법령을 운영하기 위해 행정기관이 만들어낸 규칙은 1만 3,000여 건에 이른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까지 따지면 자치법규는 10만 건을 훌쩍 뛰어넘고, 사회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그 수는 늘어만 간다. ‘법 없이 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숫자로는 감을 잡지 못하는, 여전히 법과 무관하다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따져보자. 면접을 봐 일을 구하고, 버스나 지하철로 출근을 하고,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모두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는 사람이다. 고용계약, 운송계약, 매매계약 등 법의 제재를 받는 숱한 계약관계가 일상을 촘촘히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삶을 다룬 형법, 상거래를 다룬 상법보다 민법을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구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순 있어도 먹고 입는 일에서 자유롭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도덕을 모르면 불편할 뿐이지만 집을 제대로 사고팔 줄 모르면 불리한 일을 겪기 때문이다. 의식주는 직접 삶에 관여한다. 그래서 입고 먹고 거주하는 일에 관한 일반법인 민법은 나이와 성별을 떠나 모두가 숙지해야 할 현대의 만민법이고, 따라서 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교양’이어야 한다.
『이야기 민법』은 그간 전문가의 해석이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민법의 법리를 대중의 언어로 펼쳐놓는다. 민법의 주인은 법원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며 권리도 알아야 생긴다는 점을 알리고, 민법의 지위를 대중한테서 재검증받으려는 시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부터 제갈공명의 제갈량집, 동서양의 설화, 저자가 맡은 실제 사건 등, 일상의 사례는 물론 문학과 역사까지 끌어와 법의 이치를 정확하게 추출해 전달하는 이 책은 딱딱하기만 한 법에 인문학적 재미와 깊이 있는 교양을 더해 민법을 진정 ‘민民’의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의사표시’ ‘임대차계약’ ‘저당권’ ‘공동소유’ ‘전세권’ ‘유치권’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직접 휘말려보지 않고는 그 내용과 쓰임을 알기 힘든 40개의 키워드를 실제 민법전의 구성대로 펼치며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양, 이를테면 ‘착한 법’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시도가 가능했던 건 철학을 전공하고 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법적 난제를 만나 어려움을 겪은 뒤 스스로 법의 문턱을 낮추려고 늦깎이 변호사가 된 저자의 특별한 이력 덕분이다. 저자의 말처럼 “법부터 알고 세상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헤매다 법을 알게 된 경험으로” 썼기에 법복을 무겁게 걸친 법조계보다는 캐주얼한 대중에게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 저자는 남에게 늘어놓기 어색하고 쑥스러운 자신의 체험마저 책에 녹여내 친밀감을 높인다.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익힌,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법을 법조계에 도입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보다는 역시 곤란을 겪은 일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 모양이었다.
“무슨 어려움을 겪었기에 직장 생활을 하다 전혀 다른 분야인 어려운 법률 공부를 시작할 생각까지 했지요?”
“신용보증을 서는 줄 알고 도장을 찍어줬는데 그게 연대보증이었습니다. 대신 빚을 갚느라 꽤 오래 고생했습니다.”
—76쪽에서

 

이 책은 민법 중에서도 「친족」과 「상속」 편을 뺀 「총칙」 「채권」 「물권」 편, 그러니까 재산 관련 부분만 다룬다. 자급자족하지 않는 한 타인과 재산을 교환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 모두가 교양 삼아야 할 지식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거나(매매계약), 집을 구하거나(임대차계약), 자동차 사고(손해배상)를 처리하는 일이 모두 이 책의 관심사다. 사람으로 태어나 주민등록을 하고, 학업을 마쳐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만나 재산을 합치고, 자식을 낳아 더 큰 집을 구하기 위해 또는 과도한 전셋돈을 견디지 못해 이리저리 부동산 사무소를 전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의 주인공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법언으로 모두가 법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누차 강조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오성과 한음」까지 이야기를 통해 설명
늦깎이 변호사의 친절하고 쉬운 법 해설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법문은 일반적이고 함축적인 단어를 쓴다.
법을 만들 때는 없었던 일들이 나중에 벌어져서 과연 그 법을 끌어다 쓰는 것이 적절한지 모호할 때도 있다. 그렇다 보니 법에 쓰인 낱말이나 개념에 관한 해석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언뜻 모순되게 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법을 만들었을 텐데 다시 그 법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해야 한다니 말이다.
—25쪽에서

 

한자어로 된 수많은 법률 용어와 조문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역에 가깝다. 더욱이 법전은 이 사건 저 사건 두루 적용할 수 있도록 일부러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법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실제 일어난 사례에 비추어 보는 것이지만, 삶이 고도화될수록 사례는 구체화되고 선뜻 일반화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 책은 보편적으로 검증된 ‘이야기’ 속에서 법리를 밝힌다.

 

그러고 보면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참 억울한 일을 겪었다.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설정받았는데, 살을 가져가더라도 피를 흘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까. 저당권의 원리를 유추하면 당연히 피에 대한 권리도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피를 흘리지 않고 살을 떼어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샤일록은 사기를 당한 것이다. (…) 샤일록은 새로운 담보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샤일록을 재판한 것은 상대방 안토니오의 아내였다. 법관이 사건 당사자의 배우자라면 재판에 관여할 수 없다.(민사소송법 제37조) 사랑을 갖지 못했던 샤일록은 재판에서 억울한 불이익을 겪은 것이다.
물론 재미 삼아 하는 얘기다. 실은 처음부터 다른 문제가 있었다. 사회 상규에 반하는 불법적인 조건이 붙은 것이라면 계약은 전체가 무효다.(민법 제103조) 또한 물권에서 사람의 신체는 권리의 대상, 즉 객체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319쪽에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억울함을 법리로 해석했다. 도덕이 아닌 법으로 들여다보자면 샤일록의 피해는 부당하다는 재밌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애초에 거래가 법이 지향하는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지도 살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교양 삼을 수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법의 올바른 쓰임을 보여주고, 나아가 법률 자체의 당위성을 밝히는 이 책은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법의 핵심을 이끌어낸다.
이번엔 우리나라 민담에서 보편적 법례를 찾아보자. 두 사람이 한 물건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상의 흔한 분쟁이다.

 

이웃집 하인이 담장을 넘어온 가지에 열린 감을 자기네 것이라며 나섰다. 아마 이웃집 주인이 오성이네 아버지보다 잘나갔던 것이리라. 이에 어린 오성은 주인의 방에 찾아가 대뜸 창호지로 된 방문을 뚫고 팔을 들이 밀었다. “대감, 이 팔은 누구의 것입니까?” 질문부터 틀렸다. 물권의 대상, 그러니까 객체가 되는 것은 물건이어야 한다.
—243쪽에서

 

오성 이항복의 감나무 일화를 법리로 해석했다. 오늘날의 법률을 적용해보니 법의 냉혹함과 엄정함이 느껴진다. 이렇게 소소한 분쟁도 민법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에서 누구나 법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부각된다. 저자는 오성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알다시피 원래 오성 이야기에서 이웃집 주인은 감나무나 감의 소유권 따위를 따지지 않고 오성의 재치에 껄껄 웃으며 감을 내줬다. 한데 사실 이웃집 주인 입장에서는 더 확실한 무기가 있었다. 이웃집 주인은 담장을 넘어온 가지를 자르라고 오성이네에 요구할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자를 수도 있다.(민법 제240조) 경계를 넘은 나무뿌리나 가지는 토지소유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접 자른 경우 가지에 붙어 있는 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그저 오성이가 귀여워 감을 내준 것이다.
—250~251쪽에서

 

오성의 문제를 법리대로 해석해보지 않았다면 대감의 아량을 헤아릴 수 있었을까? 민법의 존재 이유를 여기서 되묻는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일상의 권리와 의무를 칼같이 규정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안에서 관용되는 실수를 깨닫고 서로의 미덕을 재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고 이 책은 묻는다. 그래서 더욱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사례 외에도 저자는 직접 맡아온 사건과 기자 시절의 일화, 사법연수원 시절의 경험, 가족이 겪은 셋집살이의 서러움까지도 구성진 이야기로 풀어내며 법의 이해를 돕는다. 장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보편’ ‘타당’ ‘적법’한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어느새 법의 문턱이 발밑까지 낮아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법은 외우기보다는 이해하는 것
법전의 흐름을 따른 40개의 실용적인 법리 이야기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그저 아는 것으론 부족하다. 알려면 잘 알아야 하고,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민법처럼 재산이 걸린 지식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법전을 변주할 뿐 ‘위반’하지는 않는다. 실제 법전의 흐름을 그대로 가져와 민법에서 주체가 무엇인지, 법적인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는지부터 밝힌 뒤에 법적 주체의 권리와 의무를 언급하고, 그것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논리적인 흐름으로 파고든다. 수학 공식을 외우기보다는 공식을 유추하는 과정을 보여주듯 법리, 즉 법의 이치를 캐간다. 내 권리가 걸린 분쟁에 곧장 써먹을 수 있을 이치다.
법의 주체와 법적 의사소통을 정의하는 「총칙」 편, 계약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는 일을 다루는 「채권」 편, 사람-물건-사람의 애증 어린 삼각관계를 다루는 「물권」 편, 그리고 주변적인 법률과 ‘일탈’을 다루는 「특별한 법률관계와 불법행위」 편을 차례로 읽다 보면 연이은 40개의 장이 유기적인 흐름을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률행위를 위한 준비 단계’ ‘계약만 한 단계’ ‘물건을 손에 넣은 단계’ ‘계약을 어긴 단계’로 구성되어 법이 작용하는 바를 하나의 문맥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실제 민법전도 이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이 책은 문서로 기록된 법과 보통 사람이 체감하는 법 사이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구성을 취한 셈이다. 민법전과 유사한 형식을 취하되 법의 꼿꼿함은 버린 혁신성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