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침이 고이고 살아갈 마음이 샘솟는다
작가가 그려낸, 홀대받은 하루를 위로해줄 한 끼


하루키의 『먼 북소리』 속 시칠리아 정어리 파스타와 『노르웨이의 숲』 속 크로켓의 맛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소설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에 등장하는 술과 안주의 맛은? 유독 자신의 작품에 요리나 식사 장면을 자주 등장시키는 작가들이 있다. 『양과 강철의 숲』(일본 서점대상 수상작) 『기쁨의 노래』 등을 쓴 소설가 미야시타 나츠도 그렇다. 그는 소설 『누군가가 부족하다』에서 ‘하라이’라는 유명 레스토랑에 모인 손님들의 추억담을 풀어놓았고, 『태양의 파스타, 콩수프』에서는 하루아침에 파혼당한 주인공이 “매일 냄비를 쓰”며 몸과 마음을 보듬는 이야기를 전한다. 실제로 독자들에게 “작가님 소설에 나오는 요리는 뭐든 맛있을 것 같다”는 인사를 자주 듣는다는 미야시타 나츠, 맛난 것을 먹고 만드는 데 무한한 애정을 가진 그의 본격 음식 에세이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가 출간됐다.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에는 김, 찐빵, 만두 같은 평범한 먹거리부터 아펠쿠헨, 애플파이 같은 손이 많이 가는 디저트까지 다양한 음식과 그에 얽힌 일화가 펼쳐지지만, 그의 글은 단순히 맛깔난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매일매일 먹는 밥이 너를 살린단다”(『태양의 파스타, 콩수프』의 한 구절)라는 말처럼 작가가 그려낸 식사 장면은 우리의 홀대받은 하루를 뭉근하게 위로하기 충분하다. 공부에, 일에, 육아에 탈탈 털린 하루,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웠다면, 미야시타가 맛의 언어로 차려낸 가정식을 권한다.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 속 음식을 상상하고 우리의 추억을 겹쳐보며 오늘의 나쁜 일은 다 삼켜버리자.


가방을 열고 찐빵을 봤다. 찌그러진 찐빵은 틀림없이 거기에 있었다. 넣어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딸과 이것을 만들었던 평화로운 시간을 떠올렸다.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이제 와서 생각했다. 고작 강풍으로, 하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묘한 기분으로 일상에 감사했다. 찐빵에도 감사했다. 배가 고프면 이걸 먹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편안해졌다.
_248쪽



사랑한다면 좋은 것을 함께 먹자 
80편의 음식 에피소드가 펼치는 행복의 진경



원서 제목이기도 한 ‘패치(patch)’의 사전적 의미는 ‘주위와 구별된 작은 공간’, ‘장식용으로 덧대는 데 쓰는 조각’인데 이 뜻은 책의 구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 패치』는 1부 「스포츠의 현장」과 2부 「앨범 퀼트」로 나뉘어 있으며 1부는 비교적 작가의 근년 이야기를 다룬 중단편을, 2부는 56편의 단편을 개고해서 엮었다.

폭설에 갇혀 고립된 날에도 폭신폭신한 팬케이크를 구워 먹으며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일,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친구에게 따끈한 스튜를 끓여주겠다며 안부 전화를 건 일, 초하루(매월 1일)마다 팥밥을 지어 먹으며 무탈함에 감사하는 일 등, 음식이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의 성격을 닮듯 미야시타의 글에서도 그만의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가 차려낸 소박한 음식과 이를 맛보며 써 내려 간 담백한 글들은 밥 한 끼에도 마음을 다하는 작가의 정성, 또한 그런 온기가 마음을 데우고 더 나은 하루를 만든다는 삶의 태도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 셋을 키우며, 가족들 먹이는 일에 애써온 작가였기에 80편의 음식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미야시타 가족사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부끄러움 많은 딸아이가 의기소침해진 날이면, 그는 위로용 특별식 ‘실패 메뉴’를 준비했고 아들이 입학시험을 칠 때는 응원의 의미로 ‘가쓰동’을 튀겼다. 초등학생 딸이 실패 끝에 오므라이스 만들기에 성공한 일화나, 아이들이 산골 학교에서 먹은 급식은 ‘올해의 음식’으로 손꼽히며 추억으로 회자된다. 미야시타 자신을 위한 메뉴도 빠뜨릴 수 없다. 찬바람이 불면 어린 시절 사촌들과 먹던 ‘오뎅’을 끓이며 “오뎅은 행복이란다” 말해보는 것이다.
『바다거북 수프를 끓이자』의 일화들에서 온기가 느껴진다면, 행복이란 내 곁의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일에 있다는 진리를 작가의 삶이 촘촘히 보여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주한 밥상 한 끼는 기억의 맛이고, 그 기억은 우리네 삶을 버티게 한다.


애플파이를 만든다. 완성된 것을 한 입 가득 먹으며 사과 씹는 맛이 좀 더 살아 있는 편이 좋은데, 라든지 파이 반죽은 묵직한 게 좋아, 하며 기억을 더듬는 사람은 남편이다. 나는 그 말을 응, 응, 하고 들으며 메모한다. 기억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맛을 발견할 수 있다면 행복할 테고, 그 맛을 찾기까지의 길 또한 즐겁다.
_127쪽



 “홋카이도에서는 공기마저 맛있다” 산골의 풍요 속 자연주의 레시피
괴식 바다거북 수프에 숨겨진 의미


사는 곳이 바뀌면 먹는 것도 달라지기 마련, 후쿠이에 살던 미야시타 가족이 1년간 홋카이도 도카치 다이세쓰 산속 생활을 하게 되면서 식탁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공기마저 확실히 맛있는” 청정한 홋카이도 산속은 산촌 특유의 건강한 식재료로 가득했던 것이다. 방목한 토종 돼지에 수확한 양파, 그 지역 두부를 넣고 끓인 돈지루나, 사슴 고기로 만든 사슴만주, 새벽녘에 내린 눈을 그대로 퍼 담아 만든 빙수는 도시인들이 맛보지 못한 다채로운 미각 경험을 선사한다.


사슴고기를 간다. 살코기 색이 예쁜 고기였다. 마늘과 생강, 부추, 파, 말린 표고버섯 다진 것을 함께 반죽해서 소를 만든다. 피는 이스트와 베이킹파우더를 둘 다 써서 볼록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슉슉 김이 피어오르는 커다란 찜통에서 쪘더니 자그마한 말라가오(马拉糕카스텔라와 비슷한 중국식 찐빵) 같은, 맛있어 보이는 사슴만주가 완성되었다. 신선한 산 공기 속에서 먹는 사슴만주는 각별하다. 단,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산 안쪽에서 사슴 몇십 마리가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_211쪽


그렇다면 책 제목에 들어간 ‘바다거북 수프’의 정체는 무엇일까? 음식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다거북 수프는 1750년대 이후 잉글랜드에서 실제로 인기를 끌던 만찬 메뉴였다. 눈 밝은 독자라면 영화 <바베트의 만찬>(이자크 디네센 원작 소설)에서 바베트가 자신을 보살펴준 두 자매와 마을사람들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하던 음식 또한 바다거북 수프였음을 기억할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추리게임에서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필사적인 마음으로 만든 수프’를 뜻하기도 한다. 이 흥미로운 모티프를 바탕으로 미야시타 나쓰는 동명의 ‘짧은 소설’ 「바다거북 수프」를 썼으며 이 작품은 책 말미에 수록되었다. 소설「바다거북 수프」에서 주인공은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에 흔들리지만,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이 수프의 존재를 떠올리고는 다시 한번 일상을 지탱할 마음을 다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