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노석미의 탈서울 정착기
―독립을 꿈꾸다, 서울을 떠나다

 

20대 후반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울을 떠나 변두리를 선택한 한 화가가 있다.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일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타협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며 살아온 삶. 그렇게 흘러간 곳이 서울을 벗어난 경기도 자락이었고, 그중에서도 교통과 생활 여건이 불편한 시골이었다.
그 후 10여 년, 여전히 변두리에 살고 있는 그가 불안감에 팽팽했던 자신의 30대 시절을 이야기한다. 혹자에게는 대안의 삶이 될 수도 있고 혹자에게는 로망이 될 수도 있는 화가 노석미의 변두리 인생. 『서른 살의 집』은 삶의 가치를 교훈처럼 들려주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한 아티스트가 걸어온 치열한 삶의 단편 한 컷 한 컷을 보여주는 다큐다.
그 시절을 겪으며 여자,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물론 화가로서 성장해온 것을 엿볼 수 있는 한 아티스트의 성장기이기도 한 이 책은, 서른을 바라보는 20대 여자들과 삶의 과도기를 넘기며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30대 여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20대 후반에 나는 나만의 작업장이 필요했다. 서울에서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넓은 작업장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힘겹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혹은 어쩌다 보니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이 좀 더 많이 있는 조용하고 한가한 곳, 내가 가진 능력으로 힘에 부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곳, 그러니까 변두리로 옮기게 되었다.
-「책을 내면서」에서


 

타고난 이야기꾼의 그림 같은 수다
―편견 없이 세상에 부딪히며 작은 깨달음을 얻다

 

이 책에 실린 일기 구절과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화가 노석미가 1998년에서 2008년까지 기록한 수첩에서 발췌한 것이다. 20대 후반에 처음 독립하여 이사한 곳인 경기도 설악면에서 시작된 기록은 현재 직접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청운면까지 이어진다.
어려서부터 서울, 그것도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형태의 집에서만 살다가 소규모 사회로 편입하면서 겪게 된 일들은 대도시에서라면 겪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우체부가 직접 전화해 반송해버린 우편물에 대해 사과한 일이며, 짜장면을 배달해 먹을 때도 주소가 아닌 ‘무궁화울타리 집’이라고 말해야 통하는 방식. 자신이 사는 곳을 주소의 “숫자로 대변해야 하는 도시”와는 다른 소규모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그는 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시골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늘 아파트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 형태의 집에서 살아왔다. 땅에 홀로 집 한 채가 서 있고 논과 밭이 있고 멀리 산이 내다보이는 곳, 그 안에서 나 혼자 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니 문인화 속 풍경마저 떠오르며 기분이 야릇했다.
이런 집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의아하겠지만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집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람이 사는 땅 위에 놓인 집 말이다.
-33∼34쪽 「땅 위에 놓인 집」에서

 

돈을 벌기 위해, 그림 그리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히 가난이 뒤따라왔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림을 그릴 물감이 떨어져 힘들어하다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다시 집을 옮겨야 했을 때 죽기보다 싫었지만 형제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는 어떤 해결책을 강구해 삶의 반전을 기대하거나 대단한 성공을 꿈꾸지 않는다.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저 삶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이 책에 그 경험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그 와중에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맥주와 육포를 즐기는 스님과의 인연부터 집을 소개해준 사람이 알고 보니 조폭이었던 일, 옆집 소목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와의 이야기, 미용실에서 만난 동네 할머니들에게 결혼을 종용당하기 싫어 이혼녀라고 거짓말을 했던 일까지, 이 모든 경험은 그가 아무런 편견 없이 세상과 타인을 대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게…… 사실은 이혼했어요.”
콰광, 할머니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분위기는 순간 냉랭해졌다. 역시 이 방법이 가장 잘 먹혔다. 이런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내가 찾아낸 방법이었다. 싱글이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왜 아직까지 시집을 못 갔냐며, 이 동네 저 동네 생각나는 노총각들을 들먹거리면서 갖다 붙이기 시작한다.(설악면에 살 때 마을 할머니들 성화에 정말 농촌 총각과 미팅을 할 뻔했다.)
- 215∼216쪽 「우정미용실」에서

 

더불어 책에 실린 스케치와 일기를 보다 보면 화가의 다이어리를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작품만 볼 때는 미처 몰랐던 각 작품의 배경을 이해하고, 그간의 경험이 어떻게 녹아났는지 엿본다.


 

서른 살의 선택과 드라마
―매순간을 읽고 소유하다

 

경기도 설악면에서 시작해 포천군, 동두천시 그리고 청운면으로 이어지는 변두리 생활은 탈도 많지만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거창한 꿈을 꾸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분명했고, 이를 위해 다른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추천사에 나와 있듯 이 책은 “그녀가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 해야 했던 선택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속엔 예상치 않은 온갖 사건들이 잠복해 있었다.”
『서른 살의 집』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지금,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준에 부합하려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20, 30대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조금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현실이 아무리 초라하고 비루할지도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헛된 인생을 사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화가 노석미, “매순간을 읽고 소유하고자” 했던 그의 ‘변두리적’ 삶을 들여다본다.

 

나는 선택 아닌 선택을 했지만 그 순간이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바꿔주었다. 고즈넉함을 좋아하게 되었고, 이른 아침의 공기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자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일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여행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여행은 자신을 이방인으로, 대상화된 많은 것들을 생경한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그 어디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매순간을 읽고 소유하고 싶었다.
-「책을 내면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