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와 핀란드가 아이를 키워내는 방식
현지인의 눈으로 찾은, 노르웨이·핀란드식 행복의 진짜 원천


북유럽은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와 천혜의 자연환경, 서늘한 기후에서 비롯한 고유한 예술적 정서로 지상의 낙원이자 세계 여러 나라의 정책적 지향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은 대체로 몇몇 기업과 예술가와 복지정책의 일면에 의해, 그리고 때로는 관찰자의 편의에 따라 새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흔히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를 통칭하는 ‘북유럽’은 하나의 엄격한 실체가 아닐뿐더러, 그 정서가 한순간에 형성된 것도 아니다. 또한 그들의 정책도 예술적 감각도 그저 편하고 보기 좋을 피상적인 목적만을 추구한 결과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 이 나라들은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나누는 태도를 공유하며 그들만의 정서를 다져왔고, 이것이 숱한 세대에 걸쳐 전수되며 자연스럽게 지금의 정책적·예술적 노하우와 행복으로 정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방점을 찍을 곳은 ‘행복’과 ‘전수’다. 궁극적으로 행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정책이나 예술은 없고, 끝이 보이는 행복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행복을 부단히 이어가기 위해 물질보다는 사람과 자연 중심의 가치관을 익혀왔다. 그리고 이것을 대물림하면서 고유한 교육 환경이 자리 잡았다. 북유럽식 행복의 바탕엔 지식보다 ‘태도’를 물려주는 그들만의 교육이 있다.
『소리 없는 질서』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북유럽 디자인』으로 노르딕 문화예술을 앞장서서 알려온 아티스트 겸 아트디렉터 안애경의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북유럽 중에서도 자신이 오랜 기간 거주해온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주목한다. 이곳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 뒤에 어떤 가치관과 교육이 있을지 묻고, 그들의 인본주의적 교육의 비결을 찾아 나선다.


핀란드가 교육 강국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지만 분명 데이터만으로 나타낼 수 없는 배경이 있고 이를 알기 위해 탐구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관대함과 너그러운 태도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었다. 골목길에서 한 뼘 땅을 양보하고 길을 내어 통로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서 평화로운 삶을 보았다. 아이들이 사회를 먼저 통찰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의 교육철학을 통해 그들이 누리는 평화와 진정한 민주주의 배경이 어디에 근간을 두는지 깨닫게 되었다. 원칙을 지키며 정의로운 실천을 통해 일구어낸 사람들의 행복은 그 과정이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7~8쪽, 「책을 내면서」


북유럽 교육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 중이지만, 저자는 단순히 통계로 요약될 수 없고 제도처럼 단기간에 벤치마킹할 수 없는, 일시적인 관심으로는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무엇이 그곳 교육에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눈여기며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이해하고 배려하는 생활방식. 그리고 물질과 이익보다 사람과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이것이 그들의 사회제도와 건축과 예술과 생활 모두에 짙게 반영되었다. 이를 찾아 저자는 현지 거주자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가정, 학교, 유치원, 노동 현장, 예술가의 작업실 등을 돌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라포(rapport)를 쌓고 인터뷰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 일, 삶을 대하는지 들었다. 양보와 나눔과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들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며 학생이 행복한 북유럽 교육의 동력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소리 없는 질서』는 그 오랜 관찰과 고민을 담은 책으로,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교육 현장을 솔직하게 전한다. 학생, 교사, 건축가, 화가,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미소 띤 모습과 생활방식이 글과 사진에 오롯이 담겼다. 언제고 웃음을 잃지 않는 북유럽 사람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교육이란 글자와 지식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돌아보게 된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다
교육의 목표가 분명한 안팎 없는 학교


노르웨이 청소년들이 길거리로 나온 이유는 이 지구 상에서 빈곤, 불평등과 개발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돕는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소외되고 빈곤한 지역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교육도 받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한 또래 친구들의 인권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나누자는 취지의 캠페인에 동참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이다.
36쪽, 「거리에서 만난 천사들」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교육은 각자가 타인 그리고 사회와 바르고 원만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교육이 굳이 학교 건물에 갇혀 있지 않고 집, 거리, 놀이터, 어디에서든 이루어진다. 사회를 직접 부딪쳐 겪지 않고는 배려를 받을 줄도, 배려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이들은 안다. 빵을 구워 팔거나, 거리에서 연주를 하거나, 아니면 직접 모금함을 내밀어 타국을 위한 자선기금을 마련하는 일이 노르웨이 학생들에겐 흔하다. 심지어 이처럼 캠페인에 참여하는 일이 교과과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작더라도 자기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공존의 미덕을 쌓아간다.
그래서 이들의 학교생활은 굳이 학교 담장 안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아니, 학교는 애초에 담장이 없으며 마을의 일부로서, 자연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진다. 이 점은 학교생활에서뿐 아니라, 굳이 안팎을 나누지 않는 학교 건축에서도 드러난다.

마을로 이르는 길이 곧 복도를 말하며, 마을로 통하는 길은 대로가 있고 골목길이 있듯이 학교에도 그렇게 다양한 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필요할 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며 복도의 끝에는 어디나 출입문을 냈다. 수업 후 휴식 시간에 아이들은 복도의 큰길, 작은 길에 놓인 다양한 휴식 공간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사회를 이룬다.
144쪽, 「학교는 마을이다」


‘경계’를 두지 않는 태도는 학교에서 맺는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노르웨이와 핀란드에서 교사와 학생은 수직이 아닌 수평적인 친분을 맺으며 서로 스스럼없이 다가간다. 함께 식사하고 함께 실습하며, 외모나 배경이나 인종 따위로 차별하는 일을 부당하게 여긴다. 또한 교사들 사이에도 위아래가 없다. 일례로 핀란드에서 교장이니 교감이니 하는 직위는 그저 책임이 좀 더 있음을 뜻하는 직명일 뿐이다.
이러한 교육의 바탕엔 ‘가르치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한다. 이들은 지식도 지혜도 학생이 먼저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때 자연스레 몸에 익는다는 데 입을 모은다. 그래서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교육은 위에서 아래로의 주입을 지양한다. 교사는 그저 모범을 보일 뿐이다. 『소리 없는 질서』는 이러한 학교 현장을 바로 근처에서 관찰하며 이상적인 학교생활이 무엇인지 거듭 묻는다. 사진에 담긴 학생과 교사 들의 웃음과 씩씩한 숨소리가 활기를 건넨다.



노는 것도 배움의 연장이다
몸 쓰는 일,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자연환경은 거칠다. 연중 차가운 공기, 거센 바람, 적은 일조량. 하지만 이들은 자연을 개발하기보단 보존하고 적응하며 오래도록 상생을 도모해왔다. 그래서 자연 지형이 하루하루 변하는 세계적인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여전히 경이로운 자연환경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도구보다는 몸으로 자연과 부딪쳤고, 그러면서 자연히 몸 쓰는 일은 경건하게 대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도 짙게 배었다.

한겨울 뼛속까지 스미는 찬 기운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몇 겹을 입고도 베르겐의 한겨울 날씨는 여전히 모험이다. (…) 유치원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은 교대로 그룹을 지어 산을 오르고 자연에서 산책하거나 종일 밖에서 논다. 날씨가 어떻건 관계없이 아이들은 사계절 내내 어릴 때부터 노르웨이의 거친 자연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각 유치원 모두 공통적으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직접 경험하는 자연은 그 누구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자연의 이치와 경이로움은 직접 경험해봐야 안다는 것이다.
78~80쪽, 「자연을 몸으로 터득하는 아이들」


밖에서 부대끼며 노는 일도 배움의 일부인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아이들. 이들은 학교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추운 날씨에 착용할 털장갑과 털목도리를 뜨는 일이 교과과정에 포함돼 할머니가 떠주신 장갑 한 짝의 유용함을 어려서 깨닫고, 모든 학교에 목공 시설이 구비돼 일찍부터 나무를 직접 다루며 땀 흘리는 일의 가치를 몸으로 익힌다. 아이들은 이렇게 몸을 쓰는 일에 친숙해지고, 자라서도 사무직과 노동직을 가리지 않으며 편견 없이 원하는 직업으로 나아간다.
모두가 잘 살고 평등하길 지향하는 북유럽 복지의 바탕엔 이런 교육이 깔려 있다. 그것은 몇몇 정책가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벤치마킹될 수 없는, 인본주의라는 노하우에 토대를 둔 교육이다. 『소리 없는 질서』는 지식 전달에 치중한 우리의 교육을 재고할 계기를 마련한다. 아무것도 주입되지 않은 투명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정서가, 커가면서 어떤 가치로 채색되어야 할지 돌아보자고 말한다.


모든 어른은 아이였고 어린 시절 혼자만의 기억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난 그 첫 단계에서 아이들 교육의 희망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이들이 아직 세상을 인지하지 못한 그 순수한 상태에서 아이가 세상을 보기까지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인지.
6~7쪽, 「책을 내면서」



추천사


북유럽 사람들이 지닌 관대한 태도와 열린 마음, 사람을 깊게 이해하는 능력, 아름답고 가치 있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려는 가치관은 도대체 어디서 길러지고 얻어지는 것일까? 핀란드 현지에서 오랫동안 아티스트 겸 아트디렉터로 활약해온 저자는 그 의문의 해답을 ‘교육’에서 발견한다. 저자의 눈은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 나라들이 아이들을 키워내는 독특한 방식에서 좋은 인간, 좋은 사회가 설계되고 실현되는 원천적 비결을 찾아낸다. 저자는 그 비결을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하고 값진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도정일 인문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