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2010년 올해의 도서 선정

 

 

책에도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
26년차 편집자의 독서론


 

26년차 베테랑 편집자이자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마음산책> 대표, 정은숙.

편집자의 세계를 생생히 담은 책 『편집자 분투기』(2004)를 냈던 그가 이번엔 ‘독서 분투기’로 독자를 찾아왔다.

책이 업이자 삶 자체인 그이기에, 『책 사용법』이란 제목 자체가 여느 ‘사용법’과는 다른 차원임을 짐작케 한다. 편집자란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책을 사용하는 일이므로 상당 부분 경험에서 우러난 ‘책 사용법’이다.

저자는 “다만 책을 만들고 좋아했을 뿐”이라는, 얼핏 소박해 보이는 고백으로 말문을 연다. 하지만 책을 쓴 과정은 소박하지만은 않다. 꼬박 2년 동안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써 내려간 결과 탄생한 책이다. 그가 읽은 ‘책에 관한 책’들이 이 책 곳곳에 새겨져 있다. 독서란 책이 이어주는 또 다른 길을 찾아가는 일종의 여행임을 확인시켜준다. ‘책을 사용한다’는 참의미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저자는 말한다. “책도 알면 더 잘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전자책이 화두인 지금, 왜 책을 알아야 하는가. 여전히 아날로그적 독서법이 유효하다면 왜 그런가.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도록 이끈다. 『책 사용법』은 컴퓨터 게임에 매혹된 청소년들에서부터 책세계에 묻혀 사는 편집자와 저자, 그리고 애서가들에게까지 두루 쓸모 있는 책이다. 실용서이자 교양서이며, 저자 인생의 궤적과 감성이 녹아 있는 에세이다.

 

 

지금, 책을 읽는 이유

 

왜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 정보는 인터넷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뭣보다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다.

 

정보 전달의 매체가 넘쳐나기 때문에 책이 더욱 중요하다. 정보의 옥석을 가리기 위해서. 책에는 정보뿐만 아니라 정보를 검증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지성’이 들어 있다. 물론 책 중에도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 역시 책 상호 간의 비판과 견제 작용으로 극복할 수 있다. 같은 소재를 다루더라도 책마다 달리 접근하므로 책은 도움을 주는 동시에 그것을 넘어설 대상, 그러니까 부모와 같은 존재다.
아무리 바쁜 사람이라도 시간적 공백은 생기는 법. 이상적인 휴식은 피로를 푸는 것만이 아닌 평소 쓰지 않는 두뇌를 사용해 평소와는 다른 ‘무엇’이 될 때 가능하다. 일탈의 즐거움과 함께 다른 존재가 되어 정신적인 여유까지 주는 데 책만 한 것이 있을까. 이 세상은 한 권의 책이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유연하며,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사고에 균형감각이 생긴다. 책 한 권을 읽고 편견이 생겼다면, 그것을 물리치는 일 역시 책만이 할 수 있다.

 

 

괴테도 “책 읽는 방법을 배우려 80년이란 세월을 바쳤지만, 아직까지도 잘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책 사용법이 어렵다는 뜻 아닐까?

 

책읽기에는 왕도가 없고, 책에 따라 사용법이 달라야 함을 말해준다. 심심풀이로 읽는 책을 정좌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반면 무거운 책을 번잡한 곳에서 읽으면 몰입하기 어렵다. 책을 잘 사용하려면 일단 책을 늘 손닿는 곳에 두자. 처음엔 ‘눈에 비추듯’ 천천히 받아들이자. 전체에서 부분으로, 필요하면 메모를 하거나 사전을 찾아가면서. 마치 낯선 도시를 거닐듯 서서히 빠져들자. 책이라는 가이드는 여행길에 잠시 샛길(딴생각)로 새도 다 받아주고, 다른 책으로 옮겨가도록 다리도 놔준다. 무엇보다 이 여행은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뿐더러 언제고 다시 떠날 수 있다.

 

 

책읽기의 노하우

 

한 번 읽고 말 책도 있는가 하면 필요할 때마다 들춰볼 책도 있고, 지식이 빽빽이 들어찬 교양서도 있다.

그에 따른 책읽기 노하우를 소개한다면.

 

내 경우 책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1. 정보 습득에 필요한 책은 항상 가까운 곳에 두고 시간 나는 대로 펴 든다. 다 읽기 전에는 서가에 가져가지 않는다. 2. 정보 습득에 필요하나 분량이 많거나 차차 읽어도 되는 책은 목차나 내용 일단을 훑어 파악한 뒤 서가에 잘 띄게 꽂아둔다. 3. 정보 습득이 다 끝난 책은 서가 깊숙한 곳이나 창고에 따로 보관한다. 4. 가볍게 보는 책은 들고 다니거나 가까운 데 놓고 다 읽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준다. 5. 내용 파악이 안 된 책은 책상 위나 서가 밑에 쌓아뒀다가 휴일에 마음먹고 몰입, 파악을 한 다음 1~4의 방법으로 각각 처리한다. 이를 참고해, 각자 책(정보)을 갈무리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보기를 권한다.

 

 

우문을 던지자면, 책은 물건인가 정보인가? 이제는 휴대전화로도 정보 검색이 되고, 전자책도 널리 파급될 조짐이다.

그렇다면 도서관의 존재 의미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책은 현물이면서 정보다. “책은 그냥 물건이 아니다. 수많은 인생, 수많은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목소리를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책은 다른 시대의 유물인 동시에 전성기의 매력을 영원히 유지하는 물건”(필립 블롬, 『수집』)이다. 나는 (인터넷) 검색이 아닌 (현실) 탐색을 권하고 싶다. 도서관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책에 몰입하게 되는 환경 속에서 자기 내면과 마주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그렇다고 해서 종이책만 책이라 고집하려는 것은 아니다. 전자책이 본격화하려는 과도기 시점에서, 책의 의미 정립과 정보의 활용은 출판계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내가 책에서 얻은 것

 

책을 읽고 쓰는 일은 ‘대화’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편집자이자 저자, 독자의 입장에서 책과 대화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떤 작품, 혹은 어느 한 대목을 읽을 때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운명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예컨대 존 쿳시의 소설을 읽으면 인류의 여러 스승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이 힘들지만 반드시 보상이 따르고, 그 보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문학과 책에의 매혹이다. 책은 우리 감정에 반응하고 뇌에, 몸에 반응한다. 책을 읽거나 쓰는 행위는 영혼을 위무하고 치유한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현실 도피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치유 능력이 있어 어느 도피법보다도 현실 복귀가 빠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삶에 결여된 무엇, 어떤 빈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책읽기를 부추긴다.

 

 

자신의 삶을 반드시 책으로 써낼 것을 권하고 있다.

누구나 실천에 옮기긴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나?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간절한 이야기를 적으라는 게 고전적인 충고다. 누구나 가슴 밑바닥에는 절절한 에피소드 한둘쯤은 있다. 그것을, 형식과 체제 따지지 말고, 일단 힘차게 써나가자. 먼저 중요한 사건과 생각을 메모해두고 그것을 줄기 삼아 세목을 채워가듯 그려나가면 좋다. 초고를 마치면 찬찬히 고치고 그 다음 가까운 사람에게 읽혀 객관적인 시각으로 오류를 점검하자. 이 과정을 거친 뒤 글쓰기에 관한 책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얻으면 된다. 

 

 

책읽기의 계명

 

책읽기에 대한 조언은 이미 많다. 하지만 이 책에 썼듯 ‘직접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즐겁게 책을 읽기 위한, 또 잘 읽기 위한 조언 바란다.

 

스포츠 경기나 게임에 빗대보자. 진정한 마니아 혹은 팬이라면 이기고 지고를 떠나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독서가 큰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독서에는 때가 따로 없으며 특별한 방법도 없다.
사실 독서가 즐거움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우선 ‘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하고 싶다. 책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를 멘토로 삼자. 멘토가 사람이 아닌 책이어도 좋다. 멘토 책으로는 고전만 한 것이 없다. 또, 자신의 지적 욕구(필요)에 충실한 책을 우선 고르자. 골랐으면 그것을 다 사용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책을 신성시하기보다는 장악하는 자세로. 그러나 지루해지거나 어려워지면 그 책을 덮고 다른 책으로 옮겨가라. 나중에 다시 펼치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두 가지 독서 패턴을 권한다. 먼저 재미난(쉬운) 것에서 진지한(어려운) 것으로, 그리고 동시대의 난삽한 책 읽기에서 구원한 고전 읽기로. 그래야 균형 있는 독서가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바람직한 책읽기 차원을 말하자면, ‘창의적인 책읽기’다. 책과 사유, 책과 몸이 함께 가는 책읽기를 뜻한다. 읽기 싫은 책을 의무감에 읽을 것이 아니라, 관심이 가는 책에서 시작해 시간을 두고 의미를 음미하는 가운데 깊이를 더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