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미국 작가. 1899년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서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저널리즘 수업을 듣고 학교신문을 편집했으며

졸업 후 <캔자스시티스타>에서 본격적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 경력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이탈리아 전선에 운전병으로 종군하느라 6개월여에 그쳤지만,

훗날 명확한 단문과 힘 있는 긍정문으로 상징되는 헤밍웨이 문체의 토대가 되었다.
1918년 7월 박격포 공격에 큰 부상을 입고 밀라노로 후송되었다.

거기서 뒤에 두 번째 장편 『무기여 잘 있거라』의 여주인공 모델이 된 간호사 아그네스 폰 쿠로프스키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으나

이별의 트라우마를 안고서 1919년 귀향, 토론토와 시카고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921년 해들리 리처드슨과 첫 결혼을 하고 두 달 뒤 <토론토스타>의 통신원으로 파리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거트루드 스타인,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등과 교류하며 문학 활동을 했고

1923년부터 소설과 시를 모아 책을 냈다. 1926년 첫 장편이자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내놓았다.
1928년 파리의 삶을 마무리하고 미국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 정착해

이듬해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했다. 키웨스트 시절에 산문 『오후의 죽음』(1932)과 「킬리만자로의 표범」(1936) 같은 명단편들을 썼다.

1937년 북아메리카신문연맹의 제안으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했고 이 경험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에 담았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 쿠바에 아예 정착해 1960년까지 살았다.

그사이에도 통신원으로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 제2차 세계대전의 현장을 밟았다.

쿠바의 삶을 바탕으로 1952년 『노인과 바다』를 발표해 이듬해 퓰리처상을, 이태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으로 호평과 의심을 오가던 그간의 필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1950년대 말부터 우울증과 피해망상 등으로 심신이 피폐해갔다.

1960년 7월 쿠바에서 추방돼 미국 아이다호 주 케첨에 최종 정착했으나

이듬해 7월 2일 자택에서 엽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네 번의 결혼을 했고 세 아들을 두었다.


 

마음산책 저서『헤밍웨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