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2006년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올해의 도서 선정


고종석의 문체와 시의 언어가 연동하며 이루어내는 무늬

 

고종석은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라는 부제가 붙은 『감염된 언어』라는 책에서 “나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국어로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다. 정확성과 아름다움으로 한국어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평가받을 만한 글 말이다” 라는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다. 그는 글에서 쓴 대로, ‘정확성’과 ‘아름다움’이라는 두 가지 기조를 흐트러짐 없이 지켜나가며 에세이와 사회평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활발히 써오고 있다.


‘탄탄한 문장력을 지닌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종석의 글쓰기는 결 곱고 촘촘한 한국어를 직조해내는 길쌈 작업에 비유할 만하다. 이러한 장인적 태도는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새롭게 일깨우고 한국어의 영토를 확장해나가는 길잡이 역할로도 이어지고 있다. 모국어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저자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시인들의 작품을 살피는 일은, 그래서 각별할 수밖에 없다.


『모국어의 속살』은 1902년 생 김소월 이래 1971년 생 강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신문학 백년사에서 제 방 하나를 너끈히 가질” 시인 50명의 대표시집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한국어의 가장 아름다운 속살을 찬찬히 살펴 들어가는 저자의 태도에는 기꺼움이 무르녹아 있어 시 읽기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자연스레 유도한다. 해당 시집을 옆에 두고 야금야금 읽어나가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고종석 문장과 시 언어가 연동하며 이루어내는 무늬들을 보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다


많은 이들이 진단·전망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시는 문학의 위기 중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놓여 있고, 미래 또한 그다지 밝지 않다. 고종석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애써 말을 보태거나 강변하지 않는다. 고종석은 ‘책머리에’서 세태가 아닌 출발점으로 돌아가 “시를 포함한 문학이나 여타 예술은, 별의별 거룩함의 너울을 거기 씌우려는 이해 당사자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따지고 보면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다소 박하게 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종석은 시를 ‘브로치’나 ‘가락지’ 같은 장식 부속물에 위치시키면서 “브로치나 가락지 없이 살 수 있듯, 사람은 문학 없이도 살 수 있”고, “가락지나 브로치로 몸을 치장해봐야 사람이 공작새나 장미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소 시니컬하게 흘러가던 저자의 논리는 돌연 “그러나 사람은 공작새나 장미보다 아름답다”라는 문장으로 도약한다. 왜냐하면 시는 보잘 것 없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휘황찬란한 액세서리”며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기 때문이다. 최상급의 이 액세서리 덕분에 “사람의 볼품없는 몸뚱어리는 순식간에 우아함의 거푸집으로 변”할 수 있다. “삶 자체에 견주면, 시라는 것은 하찮은 물건이다”라고 운을 뗐던 저자는 “시 없는 삶은, 그것도 삶은 삶이겠으나, 정신의 윤기를 잃은 삶일 것이다. 이 정도면, 학교를 떠나서도 그리고 밥벌이와 상관 없이도 시를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라는 마무리로 시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시인 50인이 보여주는 풍경들


고종석은 『모국어의 속살』에서 지난 한 세기 한국현대시인들 중 탁월한 성취를 이룬 시인 50명과 그들의 대표시집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시인과 시집 선별 과정에서 “개인적 독서 체험이 짙게 반영되었음”을 미리 털어놓긴 했지만, “이 책 속의 이름들이 문학적 장삼이사는 결코 아니다”, “이 시집들의 저자 쉰 명은 우리 신문학 백년사에서 제 방 하나를 너끈히 가질 만한 사람들”이라는 말로 까다로운 감식안 또한 반영되었음을 내비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시인과 시집 목록은 저자의 취향과 안목이 함께 만들어낸, 신뢰할 수 있는 고갱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수많은 간선도로와 이면도로, 오솔길과 뒷골목을 누비며 한국어의 다양한 면들을 입체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 현대시문학의 수원지일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라고 평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출발하여 “시인공화국의 어느 골목길에 자리잡은 카페”라고 소개하는 성미정의 『대머리와의 사랑』을 지나 “일급의 서정시인이자 담시의 개척자”인 김지하의 『오적』 봉우리를 넘었다가 “시인공화국의 놀이공원, 디즈니월드”인 박상순의 『Love Adagio』에 이르는 등 다양한 개성을 지닌 시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은 <반달>의 작사자이자 작곡가인 윤극영이다. 문학인보다 음악인의 이미지가 더 짙은 윤극영을 소개하는 이유는 시의 위기는 곧 “서정시의 산문적 해리” 때문임을 진단하고, “결국 시는 운문성을 회복함으로써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다.



원근법과 균형감각을 지닌 평가와 재해석


고종석은 원근법과 균형감각을 지니고 시인과 작품들의 문학사에서의 위치와 공적, 삶과 작품들을 재평가하기도 한다. 예컨대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에 대해 “한국 문학장에서 김수영이라는 이름이 권력화의 길로 들어서는 한 계기가 된 시집”으로 평가하면서도 “한 예술가가 자신의 시대를 대면하며 실천할 수 있는 정직의 한 극단”으로 소개한다. 서정주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그의 공적 자아는 시시한 것이었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만 『화사집』에 대해서는 “한국어가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의 가장 아스라한 경지”,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감각의 끝간데”라는 최상급의 찬탄을 아낌없이 보내고 있다.


한편 역사라는 격랑 속에서 ‘끝간데’까지 도달하지 못한 시인들을 안타깝게 돌아보기도 한다. 백석에 대해서는 “그가 북쪽에 남음으로써, 한국문학사는 ‘정치적으로 올발랐던 미당’을 가질 기회를 잃었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시와 세계관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겨냥하고 있었던 박인환의 요절에 대해 “한국문학을 위해서, 박인환은 더 살았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오장환에 대해서도 그가 해방기의 정치 바람에서 벗어나 있었다면, “20세기는 천황제 파시즘에 부역하지 않은 대 시인을 기록하는 기쁨을 누렸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지만, “그러나 되돌아보는 자의 유리함에 기대어 앞서간 자의 불민을 탓하는 것은 얼마나 꼴불견인가?”라는 언급을 통해 가정의 부질없음을 드러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