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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 조회수 2846 작성일 2004년03월29일 03:03
이름 정은숙 작성위치 61.73.20.219
제 목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제법 긴 소감
첨 부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Things you can tell just by looking at her>--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 나는, 소문난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보면 비디오나 DVD로 꼭 찾아서 본다. 최근에는 우리 영화를 포함해서 많은 영화들이 한 주에도 서너 편씩 개봉되는 관계로 이 방면으로도 상당히 바쁘다고 해야 하겠다. 그런 한편으로는 이러한 막강한 영상의 힘 앞에 책의 중요성과 책의 독자성을 어떻게 지키고 꽃 피워나갈 것인지 두루 고민이 많다.

그러나 많은 영화를 보고 또 영상물들을 접하고 난 결론은 역시 책은 책이고, 영화는 영화라는 싱거운 것이다. 아무리 영상문화가 발전해도 그리고 수백 편의 비디오를 보아도, 눈이 아프게 읽은 책과는 다른 것이다. 이 말은 활자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상과 책의 영역이 엄연히 다르고, 독자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책과 영상은 아마도 상보적이거나 공존의 폭이 상당히 넓은 예술,문화산업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한 편의 영화를 봐도 그저 소박해질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뭐 세세하게 영화를 따지면서 보는 평론가 스타일은 아니어서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면 좋은 책을 읽고 난 후처럼 그 여운을 오래 음미하고 즐긴다. 좋은 영화도 많고, 그래서 좋은 영화를 본 경험도 많지만 다들 너무 바쁜 세상에서 그 감동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또 문제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비디오는 처음 영화를 볼 당시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것 같다.

그런데 거듭 비디오로 보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인 작품과 작품성은 좋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다시 보기 싫은 작품이 있다. 가령 미국의 스필버그 같은 영화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한 번 보기는 좋지만 다시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쥬라기공원>을 몇 번 더 비디오로 보기는 싫은 것이다. 왜 그럴까? 스필버그란 감독이 너무 능란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능란한 이야기꾼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고, 다시 거듭해서 볼 만한 작품으로는 이야기가 전면에 나서는 작품은 좀 결격 사유가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거듭보고 싶은 작품 목록은 여럿이지만, 영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내 취향에 꼭 맞는 수작 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위 전문가들로부터 수작이라고 꼽히는 작품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잉그마르 베리만, 프란시스 코폴라 등 거장들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도 즐겨 보기는 한다.

<그녀를...>의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는 두 가지 점에서 나의 관심을 먼저 끄는데 첫째는 그가 유명한 소설가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써서 20세기 문학의 새로운 탑 하나를 쌓아올린 이 대작가의 아들이 이렇게 훌륭한 예술가인가 하는 찬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또 하나는 이 문제의 인물이 바로 남자라는 바로 그 사실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로 이제 제법 이름이 나기 시작했는데 이런 영화를 남자가 만들었다는 점이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믿기 어려운 사실이 된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게는 여성의 심리를 어쩌면 이렇게 잘 알 수 있나, 하는 경탄에서부터 인간 존재의 깊은 곳을 응시하는 절제된, 흡사 여성의 숨결을 닮은 듯한 카메라 워크까지 간단치 않은 상념을 던져준다.

<그녀를...>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들은 그 연결고리가 아주 느슨해서 처음 보면 각각 독립된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이르면 이 연결고리가 너무 느슨하지도 또 기계적으로 꽉 짜여져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체의 교직 구성은 미국의 영화감독 퀜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이후 한때 유행이 되다시피한 것인데 이 영화는 이런 유행과는 한 발짝 물러서서 이런 서사의 장점들만을 취합해 오면서도 달뜨지 않는 서사체를 새롭게 개발해 내었다. 병렬식도 아니면서, 이야기의 상호 교직에도 결코 느슨하지 않는. 우리 영화 관계자들도 한번쯤 눈여겨볼 만한 이야기체이다. 아, 그러고 보면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이 이와 유사한 방식의 이야기체인 것 같기도 하다.

첫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키너라고 합니다’다. 여배우 글렌 글로즈가 분한 키너 박사는 산부인과 전공으로 나이 많은 어머니를 간병중이다. 간병인이 휴가를 떠난 것이다. 키너 박사는 복잡한 결혼생활 이후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전화를 기다리면서 연신 담배를 피워보지만 차디찬 무응대만이 돌아온다. 그 사이 키너는 타로 카드로 점 치는 여성 크리스틴으로부터 자신의 연애가 쉽지 않고 그녀 자신은 불행한 여성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레베카에 관한 환상’이다. 여배우 홀리 헌트가 분한 레베카는 은행의 고위직 여성으로 유부남 흑인 남성과 연애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임신을 하게 되어 낙태에까지 이른다. 금연 구역인 은행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이, 한 걸인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에게 창녀라는 못 들을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몇 번 담배를 사주는 등 교류한다. 이 걸인 여자는 슈퍼마켓용 카트에 전 가재도구를 실고 다니면서 멀쩡한 사람에게 엄혹한 소리를 하는 등 정체 불명의 여자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로즈의 그 남자’이다. 동화를 쓰는 전직 교사인 이 여성 로즈는 아들과 단 둘이 살고 있다. 15살이 된 아들이 불현듯 여자친구와의 섹스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인 로즈는 피임기구는 사용했느냐고 묻는다. 그저 귀엽고 어리기만 한 아들이 아닌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착찹한 기분이 된다. 앞집에 이사온 난쟁이 사내가 슈퍼마켓에서 무거운 물건을 사오는 것을 보고 차를 태워준 것이 인연이 된 로즈는 왠지 모르게 그에게 끌리는 것을 느낀다.

네 번째 이야기는 ‘잘자 릴리, 안녕 크리스틴’이다. 여기에서 점 치는 여자 크리스틴이 등장한다. 동성애자들인 릴리와 크리스틴. 지금 릴리는 죽어가고 있다. 나날이 병세가 심해지는 그녀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하는 크리스틴.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릴리는 자신과 처음 만나던 좋았던 시절을 크리스틴에게 말하라고 하고 묵묵히 듣고 있다. 크리스틴은 언젠가 어린 시절 진공청소기로 새장을 청소하다 카나리아 새를 죽였던 이야기를 하며 슬퍼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캐시를 기다리는 사랑’ 이다. 은행에 다니는 남자(2장에서 나온 레베카의 부하 직원이다.)와 연애하는 맹인 여성 캐롤과 언니 캐시가 등장한다. 캐시는 직업이 형사이고 최근 동창생이었던 한 여성의 자살 사건을 조사중이다. 맹인인 캐롤은 자신이 점자를 가르치는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빠를 좋아하지 말라고 정면에 대놓고 말한다. 캐롤은 외로움 속에서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것과 같은 절망을 느낀다. 맹인 동생을 돌보느라고 연애도 제대로 못했던 언니 캐시는 동창생 검시관과 데이트를 시작한다.

시적 운율로 가득찬 다섯 가지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사랑 없는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기가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제 몫을 제대로 해내는 사려 깊은 여자들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사랑의 상실과 외로움, 생의 원초적 비애감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특별히 진저리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싶다. 그래서 그들은 ‘알면서 걸려넘어지는 돌’ 같은 삶을 말하고 ‘누가 여자의 인생에 관심을 갖겠느냐’고 냉소적으로 중얼거린다.

이 영화가 드러내는 점은 이외에도 많지만 가장 큰 통찰력은 주역들인 여성들이 아니라 장님, 걸인, 난쟁이, 어린이 등 소수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들은 삶을 잘 살아낸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서 알고 있다.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여성들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더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 것일까, 감독이 암시한 것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나는 <남자들은 모른다> <김승희 윤석남의 여성이야기> 등 책을 기획하기도 했었다. “오늘 여성으로 살기는 어렵다. 인간으로 잘 살기는 더 어렵다.” 이 영화를 비디오로 볼 때마다 나는 중얼거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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